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9.25 20:45 수정 : 2008.09.25 20:45

김형경 소설가

세상읽기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도 젊은이들의 해방구 같은 거리가 있다. 휴일 오후에 그곳에 나가 보면 청소년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곤 한다. 그들 문화라 해봐야 음식점, 옷가게, 스티커 사진관, 오락실 등이다. 그 거리에는 타로점을 봐주는 노점도 있는데 그곳 고객도 어김없이 청소년들이다. 간혹 그들 곁에 서서 그들이 생에 대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귀 기울여 본다. “그 오빠가 아직도 나를 좋아할까요?” 여학생은 타로 카드를 든 여성을 향해 간곡하게 묻는다. “그 오빠 마음은 이미 딴 사람한테 가 있어.” 여성의 대답에 여학생은 거의 절망적인 낯빛이 된다. 잠시 침묵 후 울 듯한 목소리로 또 묻는다. “그 오빠가 언젠가는 내게 돌아올까요?” 그 순간 여학생은 한 장의 카드에 미래 전부를 걸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 광경을 볼 때면 청소년들에게 마음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곤 한다.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성교육과 함께 마음 교육도 같이 실시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성에 대한 관심이나 성의식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심리적 발달과 병행하기 때문이다. 성적 추동에서 애착과 불안의 심리가 오며, 성적 억압에서 죄의식이나 공격성이 비롯된다고 알려져 있다.

“청소년기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다. 그런 변화를 일방적으로 맞아들이거나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 성적 추동과 함께 따라오는 공격성, 성에 대한 무의식적 환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같은 것들로 그들의 정서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약간의 도움만 줄 수 있을 뿐, 가장 힘든 사람은 내면에 활화산을 안고 있는 청소년 당사자들이다.”(도널드 위니캇 <놀이와 현실>에서 요약)

그런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인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청소년들을 안아주는 일이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마음을 가르친다고 해서 청소년들이 그것을 다 이해하거나, 청소년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청소년들이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고, 왕따나 학교 폭력의 심리적 배경을 알게 되면 그런 행동을 할 때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되고,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는 다르게 반응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사춘기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자기 정체성은 그것이 완성되는 청춘기까지 힘들고 불안한 작업으로 내면에서 진행된다. 독자와의 만남을 가질 때 간혹 ‘청춘’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청춘은 아름답다는데, 제 청춘은 왜 이렇게 힘들죠?” 그런 때도 저들에게 인간의 심리와 발달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청춘은 자기 정체성을 완성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고통스러운 시기다. 겨우 사회 말석을 차지하는 초라한 시기고, 한 걸음씩 세상을 익혀나가는 미숙한 시기며, 부장보다 두 배 일하지만 급여는 절반인 가난한 시기다. 만약 청춘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오직 생물학적인 측면에서일 것이다.

성교육이 사춘기에 시작되어 청춘기 초기까지 이어지듯, 그 시기에 인간의 마음과 발달에 대한 교육도 병행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고, 몸이 성장하듯 마음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고, 삶의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인식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이 조금만 절망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형경 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