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세상읽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한국 소식이 감감하게 들려오는 미국에서도 뉴스가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이들은 당장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사로잡혀 조급증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실질적으로 ‘유고’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북한에서 커다란 변화가 당장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사회주의에서 절대 권력자의 사망은 북한처럼 철저하게 김일성-김정일 후계승계를 밟은 경우를 빼면 대체로 권력 구도의 파열음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과거,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생전에는 본격적인 권력 갈등이 억제된다. 물론 북한에서 ‘포스트 김정일’에 대비한 승계 구도가 ‘안갯속’이라는 점에서 절대 권력자 이후의 정세 변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아마 그 대비는 두 가지 방향일 것으로 짐작된다. 먼저 ‘포스트 김정일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 상황을 우리 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변 4개 국가 및 유엔외교도 필요하지만, 역시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모습은 순조로운 권력 승계에서 정치변동을 동반한 북한 급변사태 등 여러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예민한 것이 북한 급변사태로, 한반도를 통일과 재분열이라는 중대 기로에 놓이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에서 중대 변화가 발생할 때 내부가 사분오열되어도 지도층이나 주민들이 남한에 대해 적대감보다는 호의와 의존적인 정서를 가지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관리해 나갈 수 있다. 그 반대라면 우리가 상황을 주도하겠다고 외쳐보았자 소용없을 수 있다. 북한에는 우리 말고도 중국이나 국제사회라는 또다른 대안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진전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구체적인 계획이다. 북한 급변사태는 근본적으로 전쟁이 아닌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 대비계획은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서, 어느 나라도 상대방과 극단적인 대결상태에 있지 않는 한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꼭 김 위원장의 ‘유고’만이 이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비공개리에 이 계획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가다듬어 나가야 하겠지만 정부가 정치·외교·경제·사회·군사적으로 필요한 사안들을 준비하는 것이 개요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새삼스럽게 급변사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며, 한-미연합사가 준비하다가 한-미 합의로 중단한 ‘작전계획 5029’가 그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한참 잘못된 얘기다. 우리는 이미 대비계획을 발전시켜 왔다. 전쟁이 나면 자동적으로 한-미연합사령관이 통제하는 작전계획이 발동된다. 그러나 우리가 논하는 것은 휴전선에서 남북 군대 충돌이 없는 비전쟁 상황을 전제로 한다. 군대도 평시작전 통제권이 이미 한국군에 넘어와 있다. 그런데 ‘5029’의 기본은 이 사태를 관리하는 주체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한-미연합사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주권 변경이다. 또한 중국은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서 한국 정부가 반대한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의 핵심은 정치·외교·사회적인 문제이며, 군사 면에서 북한 지역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필요 부분은 한국군이 맡으면 되는 것이기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휘하는 한국 정부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한-미 간에는 긴밀히 협의하면 된다. 이것이 헌법에 규정된 대한민국 대통령의 기본 의무이며 국민의 의지라고 본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