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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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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창작과 비평>을 명예훼손으로 법정 고소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명예욕에 대한 숭산 스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이름과 모양에 집착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첫 번째 착각이다.” 갸우뚱했다. 계간지에 실린 아고라 누리꾼 나명수씨의 기고문 일부를 문제 삼은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명예훼손이란 말이지? 소송은 기각되었지만 심 의원은 법원의 기각 결정에 바로 항소를 했다고 한다. 나명수씨는 현재 구속되어 있는 상태다. 조그만 출판사 ‘여우와 두루미’의 대표인 소설가 김남일씨도 얼마 전 역시 심재철 의원에게 형사고소를 당했다. 이유는 이 출판사에서 펴낸 책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때문. 고소 이유 역시 명예훼손이란다. 다시 숭산 스님의 말씀이 스쳐갔다. ‘나는 이렇다’는 착각, 일테면 ‘나는 훌륭한 교수다’ ‘나는 훌륭한 애국자다’에 사로잡힌 망상이 명예욕의 뿌리라는 말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죄목으로 여기저기 법정 고소를 하시는 것을 보니 심 의원은 스스로를 ‘훌륭한 국회의원이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명예가 언제나 문제다. 그러고 보면 정치판에서 제일 흔한 싸움이 ‘명예훼손’으로 서로 이전투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니!)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를 나는 퍽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은 촛불세대 탄생의 생생한 보고서 중 한 권이다. 책의 어느 대목이 심 의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글쎄다. 너무나 미미한 분량이기도 하거니와 ‘아고라’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실들의 취합 기록이기도 한 이 책의 탄생 경로를 생각한다면 여기에 ‘명예훼손죄’를 법적용하겠다는 생각은 몹시 우려스럽다. 언론 출판물의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대한 자각이 박약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와 연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숨 쉬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표현의 자유 없는 민주주의란 없다. 심 의원은 ‘아고라’라는 토론의 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던 개별적인 누리꾼들과 출판물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묻기 전에 좀더 본질적인 성찰의 지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명예훼손’이 정말로 문제라면,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안전하다는 주장을 펴며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 시작할 때 이미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키기 시작한 것일 테다. 그래도 ‘명예’가 한사코 문제라면 그보다 까마득히 오래전 과거인 1980년 ‘서울의 봄’ 서울역 광장에서부터 어쩌면 서서히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한때 운동권이었고 언론사 기자 생활을 했던 사람이 출판과 언론의 ‘표현의 자유’에 이토록 둔감하다는 것이 스스로의 명예 실추의 방증일 수도 있겠다. 부단한 수양으로 명예욕을 씻어내야 한다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는 가을이다. 자신에 대한 착각이 명예욕의 출발이라는 일갈을 가슴으로 듣는다. 법어집을 펼치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기막힌 노릇이지만 매일매일 우리는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인다. 이 욕망이 만들어낸 고통은 단지 독재자나 범죄자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정치가들이 자신의 직업윤리를 가지고 철저히 지켜야 하는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시민의 명예’라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위정자들은 국민의 삶과 명예를 지키라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자신의 명예욕에 사로잡혀 정작 시민의 명예를 실추시켜서야 되겠는가. 밖을 보라 지금, 스스로 밝은 촛불처럼 세상엔 단풍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김선우 시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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