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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6 20:09 수정 : 2008.10.16 20:09

김형경 소설가

세상읽기

몇 년간 젊은이들의 신인문학상 응모작을 읽으며 그들이 점차 청춘 남녀의 사랑의 서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느낀다. 사랑 자체를 소재나 주제로 삼는 작품도 사라지고 있지만, 등장인물이 사랑을 정면으로 끌어안고 그 갈등을 제대로 치러내는 경우도 드물다. 얼마 전에는 스무 편 남짓의 단편소설을 읽은 일이 있는데 그중 단 한 편만이 (명백히 사랑이라 규정할 수도 없는) 남녀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그 밖의 소설 속 인물들은 동년배 이성과 관계 맺는 대신 다른 대상에 열정을 투자하고 거기서 갈등을 이끌어내었다. 가장 흔한 대상은 애완동물(강아지·고양이·앵무새·거북이 등)이고, 이따금 돌이나 구두 같은 물질적인 대상과도 중요한 애착관계를 맺는 행태를 보인다.

젊은이들의 소설을 보고 있으면 이제 사랑은 완전히 해체된 개념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학문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사랑의 본질을 규명해냈다. 사랑은 다만 호르몬 작용이거나, 낭만적 환상이거나, 신경증적 몰두거나, 자기애의 투사거나, 사회경제적 계약쯤으로 환원되었다. 그런 것들 중 몇 가지 개념을 도구 삼아 이성과 관계 맺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자주 ‘쿨하다’는 말 뒤로 숨는 이유도 그 허전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쿨하다는 개념 속에는 관계 맺기를 저어하는 마음, 관계에서 야기되는 갈등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마음이 선연하게 읽힌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사랑이라는 말 대신 ‘친밀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친밀성의 구조 변동>, 1992년) 그는 남녀간의 친밀성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을 몇 가지 제시한다. 이성에 대한 분열적 관점(애증의 양가감정), 자아 서사의 쇠퇴(로맨스는 곧 내러티브이다), 젠더 개념이 섹슈얼리티에 스며든 것(평등화) 등을 꼽는다. 여성의 경우에는 평등에 대한 요구와 권위적인 인물을 추구하는 심리 사이의 갈등, 남성들의 감정적 빈곤과 경제권 거부 등을 추가 문제로 느낀다고 한다.

최근에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프로그램의 히트 배경에는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의 무의식적 욕구가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출연자 저마다의 관계 맺기 역량이 드러나 보이고, 그 편차가 몹시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관계 역량이 8점(자의적으로 매긴 점수이니 양해 바라며)쯤 되는 사람과 2점쯤 되는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의 품질이 5점쯤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8점 쪽에서 온힘을 다해 인내하며 관계를 이끌어가는 동안이며, 한쪽에서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그 관계는 2점짜리가 되고 만다. 프로그램에는 속맘을 보여주는 인터뷰 장치가 있어 갈등을 조절하고 관계 맺기를 유지해 나가는 기제가 되어 준다.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무의식적 학습 효과도 있을 것이다. 속맘을 카메라에 대고 말할 게 아니라 상대와 직접 대화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아쉽지만.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결혼이 앞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거라 진단한다. 첫째는 친구 관계로서의 결혼. 배우자간 성적 몰입은 낮은 수준이지만 평등과 공감 수준은 높은 관계인 형태. 둘째는 안전한 환경으로서의 결혼. 세상에 맞서 살아가기 위해 두 사람에게 필요한 근거지이지만 서로간의 감정적 상호작용은 적은 상태. 사랑뿐 아니라 결혼도 이제 해체되는 개념인 모양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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