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
세상읽기
9월에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의 공급주의자’라는 사설에서 “한국에는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정신이 살아 있다”고 보도했다. 이 사설은 이명박 대통령의 감세 정책이 한국 경제에 시동을 걸고 외국 투자를 유치하여 7% 성장을 달성하는 데 중대한 걸음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요즘 공급주의와 정반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케인스의 부활을 알리는 소리가 높다. 미국 민주당의 실업보험과 식품 구매권, 곤경에 처한 주택 소유주 지원의 확대든 공화당 행정부의 은행 지분 매입이든, “조지 소로스가 말하는 시장 근본주의는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케인스에게 자리를 내놓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 10월15일)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8~2012 국가재정 운용계획’를 보면, 한국 경제의 실질 성장률은 2009년 4.8~5.2%, 2012년 6.6~7.0%로 예측된다. 그러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지난주에 한국의 2009년 경제 성장률을 2.2%로 예측했다. 9월과 10월 사이에는 이처럼 큰 변화가 있었다. 이런 상황 변화에 직면하여 이명박 정부도 재정지출 확대라는 케인스적 수요 정책을 펼치기로 했다. 감세 정책도 생산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라는 공급주의적 취지 대신 소비수요의 증대와 같은 정반대인 케인스의 취지로 슬쩍 포장을 바꾸어 놓았다. 공급주의 관점에서, 감세는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를 부르고 소비자는 국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예측해 감세 여윳돈을 소비하기보다는 저축한다. 곧 전형적인 공급주의는 감세가 소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본다. 반대로 케인스 관점에서는 총수요를 늘이기 위해 재정 수요를 확대할 수도 있고 감세를 통해 소비 수요를 확대할 수도 있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가지는 장점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취해진 정책들을 보면 감세 그 자체가 목적이지 수요 확대는 부차적임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감세정책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이지만 낮은 조세가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탈정부 이데올로기의 발로이기도 하다. 미국 프린스턴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올해 1월에 쓴 ‘유럽의 귀환’이라는 글에서 유럽 경제가 2000년 이후 절대적으로나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졌음을 지적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럽 나라들은 그들의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해체시키지 않았다. … 이 모든 것들은 돈을 필요로 하며, 유럽의 조세는 미국 기준에서 보면 매우 높다. … 미국의 정치 논의를 지배하는 탈정부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낮은 조세와 약한 사회 안전망이 번영에 필수적이다.” 사회 안전망을 약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생존 욕구를 자극하고 줄서기를 강요함으로써 시기심과 경쟁을 자극하는 방법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반인권적일 뿐 아니라 번영에 필수조건도 아니다. 유럽 나라들이 2000년 이후 보여 준 경제적 성취가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유럽 하면 실업률은 높고 기술 진보는 더딘 쇠락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것은 옛날이야기라는 것이다. 한국의 형편은 어떠한가? 한국은 국내총생산에 대한 사회적 공공지출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에서의 사회적 불안은 감내하기 벅찬 수준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감세는 이 문제 해결에서 가장 확실히 멀어지는 길이다.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