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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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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자 고향마을에 똑똑하다는 아이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그의 장래를 물었다. 지켜보니 그 아이는 선생의 뒤를 따르지 않고 어깨를 겨누고 걷는 것이었다. 공자가 답하길 “제대로 배워서 익히려는 아이가 아니라, 빨리 이루려는(速成) 아이일세.” ‘속성’이란 말이 처음 쓰인 용례다. 조기교육이 어린이다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큰 아이 배울 걸 앞당겨 가르치는 것을 뜻한 지는 꽤 된다. 요즘엔 중학생이 고등학교 과정을 먼저 떼는 것을 선행학습이라고 한다. 신문에는 천천히 책을 읽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속독 광고가 전면을 채우고, 서점에는 ‘한 권으로 읽는 …’ 식의 책제목이 흔하다. 이 땅의 교육이 속성을 위주로 삼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미국 명문대학에 입학한 한국인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 중간에서 탈락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어 일본에서는 노벨상을 한꺼번에 네 사람이 받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서로 다른 이 두 소식이 가리키는 지점은 같다. 가치 있는 성취가 속성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1867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지식인들은 서양학문 베끼기에 몰두한다. 베끼기란 다른 말로는 번역이다. 허나 번역이 단순한 작업은 아니다. 예컨대 소사이어티를 ‘사회’라고 번역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회사’로 옮기는 이도 있었다. 소사이어티가 ‘사람들 모임’을 뜻하니까 근사한 한자로는, 모일 사(社)와 회(會)자가 적당하긴 했다. 문제는 두 글자를 조합하는 데서 불거졌다. 갈등 끝에 사회는 소사이어티를, 회사는 컴퍼니(company)를 뜻하는 번역어로 정착되면서 새로운 말의 질서가 형성되었다. 이런 번역어 전쟁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사이언스가 과학, 이코노미가 경제로 번역되는 와중은 혼돈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번역 전쟁을 통과하고서야 비로소 서양학문은 일본식 학문으로 소화될 수 있었다. 천문학자 기무라(木村) 박사가 ‘세계 최초’의 발견을 한 것이 1902년이었다. 지구의 위도 변화 현상을 1년 주기로 나타나는 Z항(項)으로 설명해낸 것이다. 기무라 박사의 성취는 번역에 매진한 지 40년 만의 개가였다. 이로부터 또 106년이 지난 올가을, 일본은 물리학과 화학분야에서 노벨상을 여럿 타게 되었다. 메이지 이후 좌충우돌, 우왕좌왕 서양학문을 번역해서 ‘자기 말’로 학문한 지 근 150년이 지난 다음에야 노벨상 사태가 터진 셈이니 결코 빠른 성취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창의적 성취가 지식의 습득만으로 이뤄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배움은 속성으로 가능할지 몰라도(실은 그렇지도 않지만) 창조는 그 지식이 익은 다음에야 터져 나온다. 일본의 노벨상은 150년 세월이 묵어 발효된 것이다. 콩은 소금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야 된장이 된다. 말이 쉽지 발효란 고통의 세월이다. 소금은 콩을 콩으로 놔두지 않으면서 또 썩지도 못하게 만든다. 이 인고의 세월을 삭힐 때만 똥도 아니고 콩도 아닌 새로운 물질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이 발효요 숙성이며 그 결과물이 된장이다. 노벨상은 된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문제는 세월이다. 시인이 노래하듯 “익지 않은 석류는 터지지 않는다.”(이문재) 사실은 익어야 터지는 것이 학문이다. 유학생들의 실패는 속성이 학문 세계에 소용 닿지 않음을 보여주는 한 예다. ‘7년 긴병에 3년 묵은 쑥이 약’이라고 했다. 가을마다 도지는 우리의 노벨상 열망을 7년 묵은 병에 비할 수 있다면, 3년 묵은 쑥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속성과 속독이 판치는 교육현장과 1년 단위로 성과물을 요구하는 학계의 풍토는 답답하기만 하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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