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4 20:53
수정 : 2008.11.04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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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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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월가에서 터진 금융위기가 점점 우리네 삶의 위기로, 불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룬 지난번 ‘세상읽기’에 대해 많은 분들이 말씀을 주었다. 더 써 달라는 분도 많았다. 미국의 경제위기를, 극단적 승리주의의 산물이자 민주주의 문제이며, 사회의 역할과 관련하여 말한 것이 조금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더욱 다른 문제를 말하려 한다.
인간이나 사회는 위기로 치달을수록 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나는 이번 위기의 근본원인을 교육이라고 본다. 이번 월가 내파의 궁극적 원인은 교육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최고의 로스쿨과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최대로 돈을 벌며, 최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가장 빠른 승진과 가장 많은 연봉을 추구하도록 배우고 훈련받았다. 성공·경쟁·욕망·돈에 대한 적절한 추구가 없다면, 사회주의 붕괴에서 보듯, 사람들은 무기력해지며 방향을 잃곤 한다. 그러니 경쟁과 이익추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 돈·경쟁·이익 지상주의에 빠질 때 삶의 주인은 자기가 아니라 돈·경쟁·이익이 돼 버리고 만다. 삶의 목적과 수단이 역전되는 것이다.
21년 전의 영화 <월스트리트>는 월가 내면의 돈·경쟁 지상주의, 암투, 불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월가 사람들이 이번에 수많은 사람·회사·나라에 끼친 피해는 그들이 그동안 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에 이바지한 것에 비해 훨씬 크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끼친 피해를 합하면 그들이 배운 몇몇 경영지식, 개발한 파생상품, 벌어들인 돈들은 무가치를 넘어 해악적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급진 분배주의자가 아닌,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가 최근 배려와 나눔과 공생이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강조한 연유를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지식학에서는 지식의 총합을 분량 곱하기 깊이 곱하기 지속성으로 본다. 예를 들어 분량이 100, 깊이가 2, 지속성이 3(년)인 사람의 지식의 총합은 100×2×3=600이다. 반면 각각 50, 5, 10인 사람은 2500이다. 분량은 절반이나 총합은 네 배를 넘는다. 그런데 분량은 깊이와 지속성에 직접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깊이와 지속성은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 ‘5억 분량을 갖는 3년 시한’의 파생상품 개발처럼, 현재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보다는 길게, 또는 평생을 지속할 수 있는 지식은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치를 다루는 인문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돈은, 좋은 삶은, 좋은 사회는, 공동체에 대한 기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바른 이상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 하는 문제들이다. 인문학이 정녕 중요한 이유다. 바르고 좋은 생각·인간·사회는 여기서 배우고 자라난다. 지식이 가치와 품성으로 확장되고, 또 밑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자기와 타인의 영혼, 정신의 문제를 고민하는 영성이 더해질 때, 지식과 품성은 더욱 빛난다. 모든 것의 바탕은 바른 정신과 영혼인 것이다. 즉 지식분량보다는 깊이와 지속성을, 지식에 가치와 품성을, 품성에 영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은 인문교육 없이는 전혀 불가능하다.
많은 청년·학생들이 실업과 저임문제로 두려워하는 것을 맞닥뜨리며 한 사람의 교사로서 금번 위기는, 깊은 반성과 함께, 분석을 넘어 그들 현실 삶의 문제로 다가온다. 위기에 직면하여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품성과 영성을 갖추고, 담대하게 맞서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위기가 단련을, 단련이 우리를 준비케 하여 끝내는 능력있는 바른 사람으로 변모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여, 주눅들지 말고 힘을 내자.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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