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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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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탐 네 과목 중 무슨 과목이 제일 좋아?” “경제, 틀리지만 않으면 …. 틀리면 뭐든 싫어.”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며칠 앞둔 아이와 주고받은 이야기다. 한 달 전에는 이런 문답을 나누었다. “세금을 더 걷는 것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규모의 경제, 그리고 민간보다는 정부가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거라는 것.” 증세라는 거시경제의 주제를 규모의 경제니 효율성이니 하는 미시경제적 관점에서 보고, 정부를 세금을 거두어 재정지출을 하는 단순한 수요자가 아니라 세금을 일종의 자본으로 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는 공급자라는 관점에서 보는 상상력은 고등학생으로서는 높이 살 만하다. 시험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면 아이는 틀림없이 경제과목을 더 좋아하고 그래서 더 잘할 것이다. 경제의 장기성장에서 교육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중하위 이하인 나라가 경제성장을 하는 데서는 중등교육 기관에 취학하는 비율이 중요한 요소이고, 중상위 이상인 나라에서는 고등교육 기관에 취학하는 비율이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중상위 국가에 막 진입한 1980년에 고등교육 기관 취학률이 8.9%이던 것이 2000년에는 77.6%로 증가하는 데 조응하여 1인당 국내총생산은 구매력 기준으로 87년에 37위이던 것이 2000년에는 28위로 높아진다. 다른 나라가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순위가 올라갔다는 것은 그냥 성장이 아니라 고도성장을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성장은 2000년까지다. 2005년 그 순위는 32위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새로운 성장 요소도 사람을 기르는 교육에서 나타나는 어떤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이라는 목표가 거북하다면 자원절약의 의미를 포함하는 생산성 향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 가운데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의 공교육비 지출액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이 자체는 교육권 등 인권의 실현이라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실이지만 그런 부당함을 감내할 만큼 대한민국 국민의 교육욕구가 어떤 절박함의 색조를 띤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교육욕구는 매우 긴 기간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남을 것이며, 이 교육욕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 주는 것이 교육개혁의 기본방안이 되어야 한다.한국에서 교육욕구를 왜곡시키는 가장 큰 굴레는 시험이다. 이 굴레는 유령처럼 침습하여 학습자를 등수나 점수의 포로로 만듦으로써 학습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잠재적 생산성을 약화시킨다. 시험의 굴레를 완화하는 것이 교육 개혁의 전제다. 한국에서 시험체계의 정점에는 대학입시가 있으며 대학입시를 관통하는 기본논리는 고등교육의 서열구조다. 배우자를 고를 때도 제일 먼저 들이대는 거르개가 학벌이라는 보고나, 능력이 동일함에도 고등교육의 서열에 따라 시간당 임금이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를 보면, 고등교육의 서열구조에 따라 진학을 결정하는 행태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이 서열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학부모나 학습자에게 대학입시와 다른 목표의 교육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이 서열구조는 완화될 수 있는가? 같은 연구에 의하면 이 서열구조는 졸업생의 취업률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단단한 고형물이다. 취업률 공개와 같은 우회적인 정책을 통해 이 서열구조가 완화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며 완화를 위해서는 직접 개입해야 한다. 한쪽에서 말하는 국립대 졸업자격 단일화 같은 방안이 채택될 필요가 있다. 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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