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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8 21:09 수정 : 2008.11.18 21:09

김선우 시인

세상읽기

모 방송사 프로그램인 <스타킹>에서 유명해진 일명 ‘강릉 소녀’의 인터넷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소녀의 꿈은 김장훈 같은 가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인기 많은 가수만 생각한다면 김장훈 말고도 가수들이 많을 텐데 왜 하필 김장훈인가.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노래로 버는 돈을 김장훈처럼 기부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참 예뻤다.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 너무 나약할까 염려하는 기성세대도 있지만, 새로 출현한 촛불세대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감성은 ‘선한 것’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니 ‘선함’의 가능성을 발전시키고 공생의 가능성과 삶의 질을 위한 착한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 반짝이는 여린 씨앗들을 잘 키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어른들의 일이겠다.

배우 문근영을 좋아한다. 부쩍 다채로워지고 익어가는 문근영의 연기도 좋지만, 소리 없는 선행을 해 온 그의 생활 면면과 전체적인 이미지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의 조용한 기부에 대해 최근 불거진 ‘색깔론’이나 악성 댓글 사례는 인간의 길이 참 멀다는 쓰디쓴 생각을 갖게 한다. 맑고 곱게 제 길 가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 연기자에게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이렇게도 추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인가. 극우 군사평론가의 ‘좌파 음모론’은 그야말로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어서 언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겠다. 병적인 ‘레드 콤플렉스’를 가진 극우 반공주의자들의 무이성에 대해선 정말이지 측은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겐 미래만 없는 게 아니라 현재마저 없어서 오로지 과거의 한 지점에 주관적으로 고착된 병리적 망상과 그에 따른 언어폭력만이 있을 뿐이다. 오, 이럴 때 느끼는 수치심과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열망 또한 줄어들 것이니, 파이팅!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새겨진 문근영의 가족사는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며, 그의 외조부의 생애는 어려운 시대 자신의 신념과 자존을 지켜낸 존경할 만한 것이지 지탄받을 것이 아니다. 또한 문근영에겐 대중의 사랑으로 버는 돈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삶의 원칙을 제시하는 부모가 계시다. 그 속에서 문근영이 더 여리고 풋풋한 다음 세대의 아름다운 역할 모델로 성장해 가기를 빌고 싶다.

경제가 어려워져 올해는 유례없이 추운 연말이 될 거라 한다. 불우이웃들과 서민들에겐 고통이 더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공약 중 하나인 재산 헌납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국회의원들도 기부를 생활화해야 할 사람들인데 정치자금 받는 데만 혈안이 되어 들려오는 미담 한 토막 없으니 안타깝다. 국민의 세금으로 품위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들 중엔 부자들이 상당하지만 기부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의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문득 간디와 함께 비폭력운동을 이끌었던 아름다운 사람 비노바 바베의 부단운동(토지헌납운동)을 생각한다. “도둑질은 범죄지만 많은 돈을 쌓아놓는 것은 도둑을 만들어내는 더 큰 도둑질입니다. 당신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이들을 여섯째 자식으로 생각하고 그를 위해 소유한 땅의 6분의 1을 바치십시오.” 비노바는 이렇게 호소하며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었다. 그리하여 맨발의 비노바는 스코틀랜드 규모의 거대한 토지를 헌납받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눈다. 큰 슬픔, 큰 사랑, 큰 자비가 세상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발자국들. 한국 사회에 비노바 같은 이가 바로 당신이라면! 나 또한 작은 비노바라면!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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