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7 19:33
수정 : 2008.11.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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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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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일전에 한 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을 만난 일이 있다. 학생들은 대체로 3, 40대 연령대였는데 지도교수 말로는 6, 70대 학생들도 재학 중이라고 한다. 노년의 학생들은 작가가 되려고 문예창작을 배우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삶에서 꼭 쓰고 싶은 얘기가 있어 글쓰기를 배운다고 했다. 자영업을 한다는 60대 학생은 월남전 참전 경험이 삶을 너무 많이 변화시켰기 때문에 그것을 기록하고 싶다고 한다. 캐나다에 거주한다는 학생은 이민 1세대로서 캐나다 이민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고, 기업의 관리자라는 학생은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되었던 첫 세대로서 그 경험을 기록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행위에는 단지 기록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다. 글쓰기를 통한 자기표현은 우선 내면에 깃든 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 짐작하건대 저들의 경험에는 고통과 인욕과 앙다문 입술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날이 선 면도날처럼 가까이 가기만 해도 선혈이 떨어질 것 같고, 조금 물러서면 한낱 종이처럼 아무것도 아닌”(조은 <침묵으로 지은 집>)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면도날 같은 기억을 종이처럼 만드는 기능이 있다.
지난 삶을 기록하는 일은 또한 자기 정체성을 명료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전의 공동체를 잃고 삶의 전통과 단절된 현대인들은 정체성 혼돈과 ‘삶의 의미 없음’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자 로이 셰이퍼는 정체성 회복 수단으로 자기 서사 쓰기를 제안한다. 자기 이야기를 써나가는 과정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비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삶의 의미도 발견할 것이다.
개인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물론 사료 가치도 크다. 요즈음처럼 미시사·일상사에 대한 연구가 두드러진 시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했던 것이 보편적이요 전형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저마다 특정 지역과 특정 상황에 매인 특정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기록하고 교환하기를 나는 바란다. 많은 기록의 종합과 검토를 통해 비로소 과거는 그 진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잊어버릴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무엇보다 애도 작업으로서 의미가 크다. 지난날의 고통과 치욕을 현재의 심리상태로 체험하지 않으려면 그것을 잘 떠나보내야 한다. 잘 떠나보내는 애도 작업은 경험을 기록하여 객관화시키고, 거기서 교훈과 지혜를 얻고, 그것을 다음 세대까지 기억하게 하는 일로써 가능해진다. 애도 작업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진정한 힘과 관용을 얻을 수 있다. 유대 민족이 홀로코스트 경험을 글로, 영화로 거듭 이야기하듯이.
<나의 해방 전후>나 <침묵으로 지은 집>을 읽으면서 나는 살과 피가 흐르는 역사를 경험하고, 윗세대들을 더 깊이 이해하려 애쓰게 되었다. 해방 직후 국민학교 교실 수업 분위기는 어땠는지, 6·25 동란 때 예닐곱살짜리 여자아이 내면이 어땠는지, 그런 것들을 ‘체험 당사자만이 가지고 있고 드러낼 수 있는 진정성의 후광’을 통해 맛보았다. 윗세대들이 그들의 특별하고 아까운 삶의 기록을 더 많이 남겨 주었으면 좋겠다. 생애를 투자해 얻은 지혜와 통찰도 넓은 마음으로 건네준다면 고마울 것이다. 캐나다 이민사, 월남전 참전기, 중동 건설기 같은 책이 나온다면 꼭 한번 읽어볼 예정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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