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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5 19:03 수정 : 2008.12.05 19:03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세상읽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로 주로 구성된 한 연구진이 최근에 한국 경제시스템의 대안으로 ‘상생의 시장경제’라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자본·정규직과 중소기업·노동·비정규직 간의 성장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과 이런 상태를 방치하고는 대내외 환경 변화에 능률적으로 적응하는 것도, 잠재성장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들이 표명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몇 해 전에 <역전의 명수>라는 코미디영화가 있었다. 군산역 앞에 일란성 쌍둥이인 명수와 현수가 엄마와 살고 있다. 엄마는 국밥집을 하고 있고 명수는 중학교를 중퇴했으며 현수는 서울법대를 수석 합격했다. 엄마는 현수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반면 명수에게는 국밥 배달을 시킨다. 현수가 군대를 가야 할 때도, 감옥을 가야 할 때도 명수를 대신 보낸다. 엄마는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앞선 놈을 성공시켜 처진 놈에게 성과가 내려가도록 하는 ‘트리클-다운’이 둘 다를 지원해 주는 것보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길이라고 엄마는 믿었다.

‘선택과 집중’이나 ‘트리클-다운’, ‘불균형 성장전략’, ‘비교우위 이론’ 등은 격차를 줄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거나, 격차를 방임 또는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격차의 역설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격차에 대한 이런 태도가 우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열위에 있는 사람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그로 인해 건강이 훼손되고 수명이 단축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 같은 격차라도 한국에서는 더 큰 고통이 유발될 것이다. 국토면적에서 삼림면적을 뺀 후 이 값으로 인구를 나눈 값이 한국은 ㎢당 133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다. 일본이 1089명으로 2위이고, 나머지 28개 나라는 500명이 안 된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은 수많은 시선에 자신이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이고 고개만 들면 사람들이 보인다는 의미다. 이는 격차가 주는 중압감이 극대화되는 조건이다. 한국 사회에서 격차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사회이론은 거세된 인간을 가정하는 사회이론만큼 허구적이다.

올 상반기에 소득기준 상위 20%의 교육비 지출액은 하위 20% 지출액의 5배가 넘는다. 이런 교육격차가 진학격차를 낳고, 진학격차가 경제시스템에서 지위의 격차를 낳는다. 얼마짜리 교육을 받을 것인가를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므로 그에 기인한 경제시스템에서의 지위의 격차는 정의롭지 못하다.

격차를 활용하는 전략은 초기에는 생산성이 높은 부문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높은 성장률을 실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생산성이 낮은 부분은 공동화되고 나중에는 ‘트리클-다운’을 하려 해도 그런 효과를 수용할 기반이 무너져 버린다. 이는 성장기반의 제한과 환경변화에 대한 면역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격차의 문제점에 대한 이상의 인식과 ‘상생의 시장경제’ 연구진의 인식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상생을 내세웠다는 것은 격차 완화의 중요성과 격차 완화를 위한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는 우파의 성찰이라고 할 만한 일이다. 또한 연구진은 ‘일본 임금체계 개혁의 시사점’으로 ‘불황기에 기업의 고용유지 노력이 근로자의 개혁 수용을 유도’했음을 들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기업가들을 향한 고언이다. 이런 점이 성찰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 좌파 연구자들은 노동조합에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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