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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6 20:37 수정 : 2008.12.16 20:37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세상읽기

ㅊ 독자님께 드립니다.

‘건국 60년’의 뜻깊은 한 해가 저뭅니다. 보내주신 정성어린 편지에 답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일부는 60년 동안의 발전을 칭찬하기 일색인데 나는 왜 이리도 살기 힘든지, 다른 일부는 60년의 문제점을 비판하기 바쁜데 어떻게 세계 10위권에 도달하였는지 알 수 없다고 하셨지요. 편지에서 임은 저의 ‘세상읽기’를 통해 위의 양극적 시각을 넘는 지혜를 듣고 싶다고 하셨지만 제게 그럴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한 교사로서 저는 늘 학생들에게 사물이나 사회나 사람을 평가할 때 하나의 기준·측면·요인으로만 판단하는 단일표제 주의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은 진실과 진리에 도달하는 데 큰 장애를 부르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변화한 대한민국 60년은 제겐 아래 열쇳말들의 복합으로 다가옵니다. 우선 발전입니다. 우리의 60년은 생존을 넘어, 세계가 ‘한국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놀라운 성공이었습니다. 경제성장, 민주화, 세계진출 … 우리는 우리가 상상도 못하던 성취들을 목도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의지가 만들어낸 장려한 드라마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감사와 자랑의 60년이지요.

둘째, 상실입니다. 우린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시냇물, 버들피리 소리, 가재, 보리 타는 냄새는 이제 찾기 어렵습니다. 지천이던 쇠똥구리는 희귀동물로 보호받고, 사람냄새 나는 골목문화도 사라졌습니다. 정겨운 농기구나 늘 하던 일상놀이들은, 한 세대도 안 되어 전통기구나 민속문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운 60년입니다.

셋째, 후퇴입니다. 공해와 환경오염, 치안과 범죄, 교통사고는 점점 나빠졌고, 지금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60년입니다.

넷째, 역진입니다. 저는 이것을 ‘역근대화’라고 부릅니다.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나 학력과 빈부의 격차는 점점 ‘근대화 이전의’ 세습양태로 돌입하는 위험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념갈등 역시 좌우가 점점 멀어지고 있고요. 두렵고 가슴 아픈 60년입니다.

끝으로, 세계기준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지요. 무역, 국내총생산(GDP), 군사력, 외환보유, 첨단산업은 거반 세계 10위 내외이나 사회공공 비용, 복지, 자살률, 출산율, 노동시간, 국외원조와 세계시민성, 여성진출 …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 수준입니다. 부끄러운 60년입니다.

ㅊ 독자님!


임은 제게 건국 60주년에 미래를 위해 꼭 제안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전 양이 아닌 질의 선진화, 사회의 인간화, 삶의 평안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성공과 상실·후퇴·역진·세계기준 충족 여부는 서로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이른바 ‘관계학’이라는 것이지요. 성공의 요인 속에 상실·후퇴·역진이 내장돼 있다는 점입니다. 우린 너무 오래 속도와 양의 발전을 추구해, 우리 삶의 외면은 편리해졌으되 내면 영혼이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우리 삶이 편리에서 편안으로, 편안에서 평안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우리의 관용과 사랑, 나눔과 복지, 인간화, 자유와 평등, 생명존중 … 이런 소중한 인간적 가치들이 60년 동안 성장·상실·후퇴·역진·세계기준의 어디에 속하는지 건국 60년,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의 세밑에 조용히 묵상합니다. 6년, 16년, 60년 이후 우리 사회의, 나의 삶은 어떤 열쇳말로 갈무리될 것인가? 이 칼럼이 이 아침 임과 제가 함께 이 문제들을 깊이 상념하는 소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가슴을 울린 깊고 묵직한 편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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