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11 21:19
수정 : 2009.01.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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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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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방부가 대체복무 도입 약속을 뒤집었다. 1만3천여명의 젊은이를 감옥에 보낸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매년 700~800명씩 계속 감옥에 보내겠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노무현 정권 시절의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발표를 믿고 법원은 재판을 연기했고, 병역거부자들은 병역거부 선언을 연기해 왔는데 이들도 한꺼번에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지금 450여명인 수감자 수는 곧 1천명을 넘을 전망이다.
국방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백지화하겠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자마자 연구용역 책임자였던 진석용 교수에게 전화했더니 연구책임자조차 국방부가 그런 발표를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진 교수는 500쪽이 넘는 연구용역보고서의 결론은 대체복무 도입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몹시 당혹스러워했다. 국방부가 내건 핑계는 여론조사였다. 국민의 68%가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 도입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언제부터 이렇게 여론을 존중했던가? 여론조사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미국산 쇠고기는 왜 도입했고, 미네르바는 왜 잡아들이는가?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놀라운 것이다. 만약 당대의 여론으로 인권문제의 해결책을 정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번화가에 장작을 쌓아 놓고 마녀를 태워 죽이는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국방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연구용역 책임자도 모르게 서둘러 연구결과 전체가 아니라 여론조사 내용만을 떼어내 대체복무 백지화 방침을 흘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뜬금없이 이런 발표가 흘러나온 것은 현재 국방장관이 개각이 있을 경우 교체 대상 0순위로 꼽히고 있는 점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인 <월간 조선>에서조차 두 달 연속으로 이상희 국방장관에 대한 공격을 실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합참의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직접 입안하고 ‘퍼펙트한 계획’이라고 자화자찬해 마지않았던 국방개혁안을 정권이 바뀐 뒤 스스로 찢어발기는 모습은 신뢰의 위기를 자초했다. 장관이 국가전략과 동맹 발전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두 정권을 오락가락하며 눈치를 보는 사이, 육군은 육군대로, 해군과 공군은 해군과 공군대로 불만이 고조될 대로 고조되었고, 장관의 군 내부 조정자로서의 역할은 땅에 떨어졌다.
군 인사와 관련하여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비리사건으로 군복을 벗은 자신의 측근을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 앉힌 인사는 군 장교들이 내부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히 장관의 인사권을 비판하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다. 이상희 장관은 자기가 젊은 장교 시절에 읽었던 책 내용만 생각하면서 ‘용트림’ 사관(1980년대 군 당국은 <한민족의 용트림> 같은 책자를 배포해 국가주의적 역사인식을 부추겼다)에 입각하여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에 뛰어들더니, 느닷없는 불온도서 선정으로 인터넷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었고, 군 법무관들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이상희 장관은 군 내부의 불신과 비판만이 아니라 국회에서도 경질 요구가 높았다. 야당의원보다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만회해 보려고 장관은 별 500개를 모아 놓고 토론회를 벌였다는데, 이젠 병들만이 아니라 장군들까지 모아 놓고 삽질을 시키는 꼴이다.
안팎의 공격에 직면한 국방장관이 기댈 곳은 수구여론밖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대체복무 제도 도입을 뒤엎어 조금이나마 지지기운을 마련하려는 가련한 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1월6일 오정민이라는 청년이 또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내 강의를 들었던 제자다. 무능하고 신뢰받지 못하는 장관의 연명도구가 되기에는 감옥에 가야 할 젊은이들의 미래가 너무나 맑지 않은가? 쨍하게 파란 겨울하늘처럼!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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