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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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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연초여서일까, 한 문학상 심사 뒤풀이에서 원로 선생님이 후배 작가에게 무슨 띠인지를 묻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띠는 올해 삼재 나가는 해야. 한 해 동안 특별히 조심하게.” 소띠 작가가 동갑내기 평론가에게 너도 조심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그는 지갑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부적이었다. 주변 사람 중 일부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또다른 몇 명이 지갑에서 부적을 꺼내 보였다. 그 후 화제는 손금, 작명, 사주 등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는데 그 영역에 대해 모호하게 동조하거나 호기심으로 관찰하는 등 저마다 입장이 달라 보였다. 과학의 시대는 인정하지 않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경험하는 비의적인 영역은 다채롭다. 문득 특정인이 떠오르면 그날 안으로 그에게서 전화가 오고, 꿈에서 조상님이 불러준 번호를 찍어 복권에 당첨되고,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가 절에서 기도한 후 완쾌된다. 하지만 그런 에피소드는 달빛에 물은 음지 이야기여서 우리는 그것을 공적인 영역에서 언급하지 않고 삶의 지혜로 빚어내지도 않는다. 정신분석학에 ‘말할 수 없다’ 혹은 ‘말해질 수 없다’고 명명되는 두 영역이 있다. 하나는 라캉의 ‘실재계’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우울증 환자의 내면 풍경’에 대해서이다. 실재계는 이 글 주제와 무관하므로 건너뛰기로 하고, 우울증 환자의 내면 풍경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말해질 수 없는 이유도 비의적인 영역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다. “중증의 우울증 상태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제2의 자아가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제2의 자아는 일종의 유령 같은 관찰자로서, 본래 자아가 경험하는 혼돈과 무지 상태가 전혀 없는 냉정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가 재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혹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관찰한다.” 위 글은 영화 <소피의 선택> 원작자인 윌리엄 스타이런의 우울증에 대한 회고록 중 일부이다. 그 글은 환청과 환영에 휘둘리고, 구체적 악이 느껴지는 등 그동안 말해진 적 없는 영역을 고백하여 화제가 되었다. 프로이트 학파는 우울증의 분열적 상태를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라 설명한다. 우리가 의식에서 멀리 떨어뜨려둔 것들, 타자화시킨 것들이 무섭거나 기이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는 생각이다. ‘통합하기’를 통해 그것들을 의식 안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카를 융은 신비주의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보인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목사여서 어린 시절부터 축사 의식을 보며 성장한 그는 중년기에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난 후 자신이 경험한 비의적 내면 풍경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언어로 정립하려 노력했다. 과학 너머를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집단 무의식, 동일시 등의 개념을 제안했고, 다음 세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카오스 이론의 토대가 되거나 신화를 해석하는 도구가 되었다. 최근에는 심리학과 신화학이 공동 연구하여 인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틀을 제시한다. 영웅신화의 플롯, 샤먼의 입사의식, 요가 수행자의 내면 여행이 우울증 환자의 분열적 상태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 여행 자체가 우울증과 소외 상태를 치료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므로 혼돈의 내면 여행을 막을 게 아니라 잘 이행하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지지해주라는 것이다.(<신화와 함께하는 삶> 조지프 캠벨) “너의 광기로 하여금 너의 이성을 감시하게 하라”고 말한 라캉 역시 개인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신비주의 회복하기’를 제안한 바 있다.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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