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3 20:51
수정 : 2009.02.1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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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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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다음주 일본을 필두로 아시아 4개국 순방에 나선다. 미국의 신임 국무장관이 이례적으로 첫 방문지로 아시아를 선택함으로써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중시’를 강조한다는 의도는 명백히 보인다. 중동과 같은 시급한 분쟁지역을 제쳐놓고 긴급한 과제가 있는 것도 아닌 동아시아 지역을 택한 데 대한 의문도 순방 발표 기자회견에서 제기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의 인기를 활용한 ‘미소 외교’의 효과가 크고, 또 구체적인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도 적은 무난한 지역이라 첫 방문지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북핵 문제를 포함해서 동아시아 정책의 재검토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방문이라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의 현안보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동아시아 주요국, 특히 일본과 중국을 다독거리고 끌어안기 위한 전략적 토대 구축에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미국 국채 매입의 1위와 2위국인 중-일의 협력이 미국 경제 회복에도 필수적이다.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동아시아 외교 면에서는 ‘일본 안심시키기’가 두드러진다. 미국의 신임 국무장관이 첫 방문지로 일본을 선택한 것은 전례가 없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상원의 임명 청문회에서 “미-일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정책문서에서 반복되어 온 표현이지만,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타 동맹국들과 구별해서 별도 취급한 형식이 눈길을 끌었다.
주일대사에는 이전 클린턴 정권 때 미-일 동맹 재정의를 주도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내정되었다. 국무부와 국방부에서 동아시아 정책의 실무를 총괄하는 차관보에는 지일파로 분류되는 커트 캠벨과 월러스 그렉슨이 임명되었다.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 일본 정부와 언론은 ‘미-일 동맹 강화’ ‘일본 중시’로 환영하면서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만큼 오바마 민주당 정권의 ‘중국 기울기’에 대한 불안과 경계감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바마 정권이 지향하는 동아시아 정책이 종래의 냉전적 ‘동맹’ 개념을 뛰어넘으려 한다는 점이다. ‘미-일 동맹’과 ‘일본 중시’가 중국 포위망의 성격을 지녔던 부시 정권의 네오콘적 개념과는 달리, 중국을 포괄하는 지역협력체제 구축의 토대라는 탈냉전적 의미가 새로이 부여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일 동맹’을 발판으로 ‘미·중·일’의 협력관계 구축이 오바마 정권 동아시아 외교의 중심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캠벨이 주도해서 지난해 6월에 작성한 보고서 ‘밸런스의 힘’은 미·중·일 삼국의 고위급 협의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국무부 부장관에 임명된 제임스 스타인버그가 중심이 된 ‘피닉스 보고서’(2008년 7월)는 좀더 포괄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과제가 “전통적인 동맹국과의 관계 유지가 대두하는 새로운 지역대국을 봉쇄하거나 위협한다는 인상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최선의 방법”으로 “미·중·일 등의 삼국관계”를 비롯한 다층적인 지역협력체제 속에 종래의 동맹관계를 “접목”(embed)시킬 것을 제창했다. 스타인버그 자신도 지난해 1월 강연에서 “미·중·일의 균형 잡힌 삼각형이 지역통합의 견인차가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일본에서 ‘미-일 동맹의 견지’를 천명한 뒤 중국에서는 미-중 전략대화의 획기적인 강화를 제창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경색과 경제위기로 지역에서의 외교적 위상과 발판이 현저하게 약화된 한국이 이런 ‘큰 틀 짜기’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과 모색이 요청된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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