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9 21:06
수정 : 2009.02.19 21:06
|
김형경 소설가
|
세상읽기
“얼마 전까지 정신의학은 범인의 어린 시절을 거의 다루지 않았고, 범죄자를 변태적인 본능을 타고난 사람으로 간주했다. 이제는 이 분야에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는 듯하고, 사람들의 이해가 깊어지는 조짐이 보인다. 2003년 6월8일 르몽드지는 한 기사에서 파트리스 알레그레라는 범죄자의 어린 시절을 상세히 다루었다. 몇 가지 개별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가 여러 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목 졸라 죽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났다. (중략) 파트리스는 매우 젊은 부부의 첫째아이였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를 전혀 원치 않았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는데, 집에 오면 아이를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아이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몸을 피했다. 엄마는 매춘부였다. 그녀는 고객을 상대하는 동안 아이에게 보초를 세웠다. 문을 지키고 위험(아버지의 귀가 등)이 가까이 오면 알려주도록 했다. 아이가 옆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항상 지켜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귀를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흐느끼며 신음하는 소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달림을 받았다.”
앨리스 밀러의 <폭력의 기억>이라는 책 한 대목이다. 저자는 범인을 “자기 부모에게 정신적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라 표현한다. 저자는 또한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차우셰스쿠, 이디 아민, 사담 후세인 등 잔혹하게 힘을 남용한 독재자들의 공통점도 어린 시절 학대받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무력한 상태에서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분노의 감정이 보살펴지지 않은 채 내면에 오래 누적되면 급기야 딱딱하게 변하여 온정도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증오가 된다. 폭력 앞에서 아이는 또한 존재가 소멸될지도 모르는 공포를 느끼며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꿈꾼다.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동일시하면서 자란 아이가 마침내 원하던 힘을 성취하면 그것이 내면의 증오와 만나 저 독재자들처럼 위험한 인물이 된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무자비하고, 가차없고,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무지한 사람이었다.”
오토 컨버그는 사랑 속에 증오가, 성욕 속에 공격성이 어떻게 녹아드는지 연구한 현대 정신분석학자다. 그는 욕동 이론과 대상관계 이론을 모두 참고하여 인격 장애, 성도착, 공격성 등의 병리가 생애 초기 중요 대상과의 경험 속에서 결정된다고 제안한다.(<인격 장애와 성도착에서의 공격성>)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없는 이른 시기부터 인격의 왜곡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아기는 부모의 나쁜 보살핌조차 애착의 대상으로 삼는다. 구강기 욕구, 항문기 권력 투쟁, 오이디푸스기 리비도 등이 왜곡, 좌절된 상태 그대로 환경을 흡수하듯 정신이 형성된다. 설사 부모에 대한 분노를 인식하더라도 그가 곧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공격성을 억압하며 거짓된 자기를 형성한다. 오히려 이상화된 부모와 행복한 가정 이미지를 창조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정신을 보호하는 도구로 삼는다. 그렇게 억압된 공격성과 리비도의 결합물은 보통 연인이나 아내 등 부모보다 만만한 대상을 향해 표출된다. 연인과 아내에게조차 부모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다면 익명의 낯선 대상을 향해 은밀하게, 무자비하게 사용될 수 있다.
앨리스 밀러는 몇 차례 바티칸에 투서를 보내 아동 체벌이 그 이후에 끼치게 될 폐해를 젊은 부모들에게 계몽해달라고 부탁했다. 오토 컨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에 사랑해주기보다는 스무 살이 되어 감옥에 집어넣기를 더 좋아한다.”
김형경 소설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