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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4 19:38 수정 : 2009.02.24 19:38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세상읽기

1950년대에 나온 철학개론 교과서들에는 베이컨, 퍼스 등의 학문 분류가 나온다. 17세기나 19세기의 학문 분류가 현대와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하고 놀라게 된다. 지금도 도서관에서는 낡은 듀이나 미국 의회도서관의 분류법을 그대로 쓰고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학문의 분류는 너무나 복잡해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체계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의 학문은 세분화와 종합화라는 두 가지 특징을 함께 갖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은 무서운 속도로 쪼개지고 있어 사전에도 미처 오르지 않은 새 학문이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한편 여러 학문들이 어지럽게 어우러지고 있음을 본다. 학문의 융합은 일찍 시작했다. 19세기에 물리학과 화학 사이에 물리화학이 생겼다. 그 다음에 화학물리학이 나왔고 20세기에는 생화학, 생물물리학이 나타났다. 물리생물화학 또는 생물물리화학은 세 과학이 아닌 하나의 과학이다. 학문의 융합은 인문 사회과학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철학사, 역사철학, 정치경제학, 법사회학, 사회인류학이 낯설지 않더니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넘나드는 법의학, 사회열역학, 양자경제학도 간판을 달았다.

모든 학문이 엇물린 과학기술학(STS)의 탄생은 날로 중요해지는 과학기술을 인문 사회과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세기 말 싹튼 과학사·과학철학은 20세기 전반에 이미 독립 학문으로 정착했다. 1930년대로 올라가는 과학사회학은 7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뒤를 이어 과학기술정책학, 과학기술경제학, 과학인류학, 기술경영학, 과학과 문학, 과학과 법 등 분야들이 전문화되어 갔다. 이런 분야들을 묶어 과학기술학으로 이른지도 한 세대가 넘었다.

과학기술학이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은 얘기도 해야겠다. 1946년 출발한 대한의사(史)학회를 효시로 한국과학사학회(60), 기술경영경제학회(93), 한국과학철학회(95), 한국의료윤리교육학회(97), 한국생명윤리학회(98), 한국산업기술사학회(99), 한국과학기술학회(2000)가 잇따라 태어났다. 그 밖에도 한국과학교육학회, 한국공학기술교육학회, 한국기술혁신학회, 한국정보사회학회, 한국환경철학회, 한국환경사회학회, 환경과문학회 등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대학에는 1984년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비롯해 전북대 과학학과(95), 고려대(95), 중앙대(95), 부산대(98), 한국과학기술원(KAIST)(01)의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이 설치되었고 서울대 기술정책 협동과정, 포항공대, 한양대의 과학기술학 프로그램 등이 있다. 학회 회원, 석·박사 수로 계산하면 한국의 과학기술학 인력은 1천명을 훨씬 넘어선다.

90년대 한국과학재단의 지원 분야에는 과학기술학이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히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은 복합학을 넣었다. 작년 말 교육과학기술부는 과학재단과 학진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국가과학기술 표준분류체계의 재편작업을 추진했다. “융합기술 등 신기술 발전 추세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만든 재편 안을 보면 복합분야인 과학기술학과 여성학이 빠져 있다. 철학 일반에 과학철학, 서양철학에 분석철학, 역사 일반에 여성사·경제사, 서양사에 서양사상사가 있으나 과학기술사는 보이지 않는다. 과학기술학과 여성학은 대분류로 따로 들어가야 마땅하다.

한국연구재단 설립준비위원 후보 9명은 과학기술과 사회과학자로만 되어 있다. 인문학은 물론 과학기술학 대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재편 안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 만들었고 학술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자문은 받지 않았다. 과학기술학 쪽에서는 이번 누락이 행정착오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고 있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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