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4 18:53
수정 : 2009.03.04 19:14
|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세상읽기
고용위기가 날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미 100만 실업자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실업자에 취업 준비자, 구직 단념자, 추가 취업 희망자 등을 더하면 고용위기를 겪는 인구가 350만에 육박한다. 더욱이 정부 통계 기준으로 545만명에 이른다는 비정규직을 상기한다면, 실업자 수가 외환위기 시기의 149만명에 미치지 못한다 하여 안도할 여유가 없다.
위기의 심각성이 뚜렷해지니, 우리 정부도 수십조원의 예산으로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사회 안전망 보완책도 포함된다니 반길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발표될 대책이 현재 위기를 일과적인 경기후퇴로 치부한 임기응변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현재의 위기 저변에 수출 주도형 산업화라는 한국형 발전전략의 파국이 가로놓여 있다는 정황이 늘다 보니, 우려는 더욱 커진다.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에서 시작된 미국의 신용위기가 아시아 수출경제의 위기로 이어지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빚에 몰린 미국인들이 자동차와 컴퓨터를 사지 않으니, 이들의 소비에만 목을 매던 아시아 공장들이 폐업 위기로 몰리고 있다. 1년 사이 대만의 수출은 44% 하락하였고, 한국은 30%대의 감소를 보였다.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대만의 경우 두자릿수의 국내총생산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수출 비중이 46%인 한국과 다른 아시아 수출국들도 올해 5∼10%의 총생산 하락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세계경제를 지탱하던 미국인들의 과잉소비 습관이 상당기간 회복되기 어렵다는 전망은 수출위기가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일깨운다. 미국의 금융위기와 함께, 국민의 내핍생활을 강요하며 수출경쟁력 강화에만 몰두해 온 한국형 발전전략도 이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심화되는 위기 타개책에서 국민 삶의 질 향상과 내수 확충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수정된 발전전략을 담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사회안전망 확충도 수출주도 성장대열에서 탈락한 빈곤층의 생계지원이라는 소극적인 전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난 시기 경험은 기초보장 위주의 빈곤 대책만으로는 사회 양극화 추세를 바로잡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외환위기 이래 지속되고 있는 서민의 하강분해를 막고 중산층을 복원하는 적극적인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고용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특히, 대다수 선진국에서 주된 고용대책으로 작동하는 실업보험의 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업수당은 실직가족의 생계를 보호하는 안전판 기능과 함께, 수요 창출을 통한 경제의 자동 안전장치 역할을 하였다. 우리도 고용보험을 도입하고 단기간에 확대하였지만, 여전히 다수의 고용 불안정층이 그 혜택에서 제외되어 있다. 파산 위기의 영세 자영업자, 보험 사각지대의 비정규직, 실업수당을 소진한 실직자, 미취업 상태의 청년층 등 수백만 서민이 고용위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고용보험의 빈틈을 메우는 새로운 고용 안전망을 통해 실직수당과 고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절실하다. 새 안전망은 내수 부족으로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방책이기도 하다.
과소소비의 내핍생활을 통해 성장신화를 이뤄 온 우리 사회도 이제 소비의 미덕을 논해야 할 전환기에 처했다. 소비가 곤경에 처한 이웃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투자이기도 한 상황에서, 가진자의 탐욕 이외에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제 고용위기의 서민층을 대상으로 취업지원과 실직수당을 제공하는 새로운 고용복지 제도를 통해 사회통합과 경제회생을 도모할 때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