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2 18:49
수정 : 2009.03.1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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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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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햇살 좋은 봄날이 시작되고 있다. 얼굴 가득 햇살을 받으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는 듯 몽롱한 기분이 되면서, 현실감 없는 꿈들을 꾸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전쟁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데, 결혼식을 치른 젊은이들에게 의무적으로 결혼과 자녀 양육에 대한 교양 강의를 수강하게 하는 건 어떨까. 군 복무 전에 훈련소에서 심신을 단련시키듯, 운전 면허증을 발급할 때 안전 교육을 받게 하듯이. 그러자면 부모 역할을 세밀하게 안내하는 매뉴얼이 있어야 할 텐데, 전문가들이 그들의 지식 권력을 쉬운 언어로 대중들에게 나누어주는 노력들이 더 많이 이루어지면 좋을 텐데. 전문가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아동 양육의 노하우를 쉽게 강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만들어져도 좋을 텐데. 주부들을 청취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녀 양육의 실제 상황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조언해주는 상담 코너를 운영해도 좋을 텐데.
각 학교에 양호교사가 있듯이 심리 상담 교사도 상주시키면 좋을 텐데. 학생들이 몸이 아플 때 양호실을 찾듯 마음이 아플 때는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좋을 텐데. 학교에 상주하는 상담 선생님은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모든 학급을 돌면서 한두 시간씩 사람 마음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강의해도 좋을 텐데.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초등학교 선생님을 양성할 때 그들을 준심리상담가 정도의 역량으로 키워내면 좋을 텐데.
대학에 심리학과가 많아지고, 연관 학문을 공부한 학생들을 심리 상담가로 키워내는 훈련 기관이 생겨 실제적으로 활용 가능한 인재가 많이 양성되면 좋을 텐데. 그들을 병원이나 상담 센터뿐 아니라 모든 학교, 장애 아동을 위한 기관, 사회복지 시설, 기업체, 교도소, 양로원, 응급서비스 센터 등에서 일하게 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양성된 인재들은 천재지변이나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피해자들을 위해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해도 좋을 텐데. 그렇게 되면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줄 일자리도 많이 생길 텐데.
우리가 몸이 아플 때 최소한 그것이 복통인지 두통인지를 구분할 수 있듯이, 마음이 끓어오를 때 그것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질투나 시기심인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뒤에서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플을 달거나, 면전에서 공격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건 네가 너 자신을 그토록 미워한다는 뜻이야”라고 말하며 흘려 넘기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 괴팍하게 구는 친구에 대해서도 “그는 지금 애도 중이야”라고 말하며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보편화되면 좋을 텐데.
백일몽처럼 들리지만 사실 저 세목들은 외국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이다. 영국은 2차대전 때부터 전쟁의 충격을 경험한 아동을 보살피는 방법을 전문가에 묻고, 임시 부모와 현장 지도자들에게 그의 강연을 듣게 했다.(도널드 위니콧 <박탈과 비행>) 프랑스 정신분석가 프랑수아즈 돌토는 라디오에서 자녀 양육 상담 코너를 오래 진행해 ‘프랑스 여성들의 어머니’라 불린다.(프랑수아즈 돌토 <도미니크 이야기>) 전문가들이 수용 시설이나 보호 시설에 근무하고, 테러나 재난 등의 위기 상황에서는 자발적인 자원봉사도 하는 것이 미국 사례다.(낸시 맥윌리엄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일상적인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심리 용어를 사용하는 광경은 미국 드라마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주 만난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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