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3 18:54
수정 : 2009.03.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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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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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총선거를 앞둔 일본 정계에 때아닌 돌풍이 몰아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늦어도 올해 9월 이전에는 실시될 총선거에서 집권 가능성이 유력시되던 제1야당 민주당의 오자와 대표의 핵심 보좌관이 선거자금규정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된 것이다. 오자와 대표는 원래 자민당 다나카파의 ‘적통’을 계승한 정치가로, 건설업계를 기반으로 한 금권정치의 전형으로 꼽혀온 것도 사실이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확보해온 능력이 ‘거물 정치가’라는 위상의 기반임과 동시에 오자와 대표의 정치적 약점으로도 지적되어 왔다. 전통적 수법의 정치가로서 민주당의 선거 승리에는 공헌할 수 있지만, 정치자금을 둘러싼 불투명성 때문에 총리와 같은 공직에 취임하기에는 약점이 너무나 많다는 견해가 이전부터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수사의 타이밍과 수법 등에도 이례적인 점이 적지 않아 검찰 수사의 정치적 배경과 의도가 또다른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도 비밀헌금이나 뇌물수수와 같은 직접적인 불법행위가 아니라, 특정 기업으로부터 받은 헌금을 별개 정치단체의 헌금인 것처럼 분산 위장했다는 일종의 탈법 행위이다. 일본 정계에 아직 뿌리 깊은 정치자금 수수의 구조적 문제의 한 단면이며, 오자와 대표만의 명백한 불법 헌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이제까지는 이와 유사한 우회 헌금이 문제가 되었을 경우에는 정치자금의 반환이나 기재 변경 조처가 이루어지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행해진 정치헌금에 대해 총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의원보좌관의 전격 체포라는 강경 조처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여겨지고 있다. 오자와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가 검찰의 ‘국책수사’ ‘정치적 표적수사’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일본의 언론과 여론에도 검찰 수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조가 적지 않다. 그 배경에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국민의 선택’이 정권과 관료기구의 힘에 의해 원천봉쇄되는 것에 대한 경계감이 엿보인다.
이번 사태 직후에 실시된 주요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는 여전히 일본 국민의 다수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월6일과 7일에 걸쳐 실시된 <마이니치> 신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오자와 대표는 책임지고 당수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차기 총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설문에 대해서는 ‘자민당’ 29%에 대해 ‘민주당’은 40%에 달했다. “누가 총리에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오자와’(13%)가 ‘아소’(10%)를 근소한 차로 웃돌았다. 이 같은 경향은 다른 조사에도 거의 공통되고 있다. “오자와 대표는 물러나야 하지만 민주당에 의한 정권교체를 기대해 본다”는 것이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일본 국민의 착잡한 심경인 것 같다.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표적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은 수사 대상을 자민당 유력 의원에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내부에 다양한 세력을 안고 있는 민주당이 오자와 대표 사임 이후에 단합된 모습으로 선거전에 임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검풍’에 이어 ‘북풍’도 한 변수가 될지 모른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파란을 일으키게 되면 대북 강경노선의 아소 정권으로서는 국내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은 한반도 정세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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