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5 18:57
수정 : 2009.03.1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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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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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재판 개입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2004년부터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사법권 침해를 조사했던 사람으로서 이번 논란을 보는 마음은 더없이 착잡하다. 조사를 시작할 때는 말도 안 되는 판결들이 줄을 지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고 자신의 재임 시절이 ‘오욕과 회한’으로 얼룩진 시기였다고 탄식한 이영섭 대법원장의 퇴임사를 떠올리면서 나는 사법부에 가해졌을 권력의 그림자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조사를 하고 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한 것 같은 폭력적 개입은 없었다. 그 흉악했던 군사독재시절에도 현직 법관이 중앙정보부/안기부에 끌려가지는 않았다. 존중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눈짓 하나, 말 한마디에 알아서 기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압력의 원천은 권력의 중심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사법부 내부에 있었다. 비슷한 시절 망가져버린 언론도 제일 심각한 문제는 외부의 압력보다도 내부에 있었다.
이승만 시절의 사법부가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외압이 약해서가 아니라 김병로 대법원장이 잘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법부는 김병로 대법원장 같은 분을 키워내지 못했는가? 처음부터 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법파동의 주역들이나 이번 집시법 위헌제청을 하고 사표를 쓴 박재영 판사처럼 스스로 사표를 쓴 사람들도 있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대법원 앞에 가서 목매달아 죽어버릴까 고민하던 법관도 있다. 젊고 양심적인 판사들이 떠난 자리를 권력지향적인 사람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서울형사지법원장-대법원 판사로 수직상승하는 사람들, 100여일의 불법 감금과 지독한 고문을 호소하는 조작간첩사건 피의자들에게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는 말 없이 땅땅땅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람들, 안기부가 보내온 공판대책에 나온 대로 재판을 진행한 사람들, 이런 자들이 출세할수록 사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 당시 시민들의 사법불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나는 이번 사건이 그래도 법원에서 과거사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일어났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과거를 백번 청산하면 무얼 하나? 말도 안 되는 긴급조치에 따라 엉터리 판결을 내린 판사들의 이름마저 판결문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 군사독재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렸다가 지금 피고인석에 서야 하는 남미의 판사들 얘기는 정말 딴 세상 이야기다.
문제의 핵심은 이용훈 대법원장 자신이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1971년 사법파동 당시 젊은 판사들을 대신하여 성명서를 읽던 유태흥 전 대법원장의 불행한 행보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5공화국 시절 권력의 요구에 순응하고, 잘못된 법관인사를 비판한 소장법관을 당장 전출시켜 탄핵안까지 발의된 대법원장 유태흥은 뜻밖에도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시절에는 모든 정치적 외압을 막아내어 소장법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다. 1993년 3차 사법파동 당시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으로 소장판사들의 의견을 법원 상층부에 전달하는 가교 구실을 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금 의혹의 몸통이 된 것은 사법부와 국민 모두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퇴임사에서 오욕과 회한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영섭으로 족하고, 대법원장 탄핵안이 발의되는 것은 유태흥으로 족하다. 김병로처럼, 아니 그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할 수 없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대법원장이란 그런 자리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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