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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7 21:23 수정 : 2009.03.17 21:23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세상읽기

중국과 이탈리아는 요리에서 쌍벽이다. 두 나라 음식은 세계 어디를 가나 인기다. 그런데 중국이 이제 좀 침체라면 이탈리아는 나날이 상승세다. 50년 전 서울에 두어 군데 선을 보인 이탈리아 식당이 5년 전 500을 헤아렸다니 이제는 천에 육박하지 않을까. ‘피차’(피자는 일본식 발음)와 함께 외국에 주로 스파게티로 알려진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의 꽃이다.

파스타는 ‘밀가루 반죽’을 가리킨다. 국수가 가장 잘 알려졌지만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다른 350여 종류가 있다. 과장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이 중국에는 1200종의 국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파스타의 종류도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라자냐와 라비올리(만두)가 있고 피초케리(메밀국수), 뇨키(감자녹말 수제비), 폴렌타(옥수수 가루떡)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파스타는 수프와 더불어 이탈리아 요리의 프리모(첫 코스)를 이룬다. 마른 파스타는 밀가루와 물로 만들어 오래 보관할 수 있으나 생 파스타는 달걀로 반죽하며 냉장고에 넣어 하루이틀 안에 먹어야 한다.

속설로는 마르코 폴로가 13세기 중국에서 파스타를 이탈리아에 들여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람들의 조상 에트루스카 사람들의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에 파스타를 만든 모습이 보인다. 거꾸로 유럽에서 중국으로 갔다는 주장이 있고, 중동에서 시작해 동서로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주경철 옮김)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아랍사람들이 발명했고, 아랍 영향이 강한 시칠리아에서 많이 먹었다. 생 파스타는 빵보다 훨씬 비싸 서민의 음식이 아니었지만 치즈와 짝지어 배추와 고기를 대체하면서 유럽 전역에 퍼졌다.

냉동식품, 인스턴트 식품, 패스트 푸드의 세계화에 따라 미국에 이어 유럽의 전통 식생활이 무너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 대세에 저항하는 몇 안 되는 나라의 하나다. 이탈리아 도시에도 맥도널드 한두 군데와 대형 슈퍼마켓이 있지만 시장과 작은 가게들은 살아 있다. 시민들은 신선한 식품을 구하려고 하루에도 몇 번 단골 가게에 들른다. 제철 제 고장에서 나온 질 좋고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으로 한국서도 유명한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하나가 아닌 ‘여러 이탈리아’를 강조한다. 파스타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살자(소스)만 해도 볼로냐는 다진 고기와 포도주가 들어간 라구이고, 나폴리는 토마토와 바질을 쓰며, 제노바는 바질·잣·치즈를 갈아 올리브기름에 갠 페스토, 시칠리아는 마늘과 고추를 많이 넣은 해물 파스타다.

1980년대 말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을 모토로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슬로 푸드’(여유식) 운동은 20년 만에 10만 회원을 자랑하며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 작년 10월 토리노에서 열린 이 운동의 국제대회에는 한국에서 회원과 공무원들이 참가해 <한겨레>에 크게 보도되었다. 때맞춰 한국환경사회학회는 먹을거리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모임을 열었다. 파스타야말로 ‘여유식’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파스타가 있다. 칼국수·막국수·수제비·만두·부침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맛좋고 영양가 높고 건강에 좋은 전통음식들이 빠른 음식, 즉석식에 밀려 맥을 못 추고 있다. 젊은이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파스타 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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