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24 21:55
수정 : 2009.03.24 21:55
|
김별아/소설가
|
세상읽기
“뭐 드실래요?”
누군가를 만나 식사를 할 때면 으레 듣는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전 아무거나 … 잘 안 먹어요.”
다잡지 않으면 한없이 피둥피둥 살찔 듯하여, 언젠가부터 욕망의 다이어트를 해왔다. 타의에 의한 가난은 궁핍이지만 자의에 의한 가난은 청빈이라기에, 배가 비면 몸이 가볍고 마음은 흔쾌했다.
그러던 것이 아이를 낳은 뒤로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굶어도 자식은 주리게 둘 수 없는 게 어미의 심정이다. 더구나 성장기에 접어든 아이는 가히 놀라운 식욕을 자랑한다.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돌아서자마자 과일과 아이스크림, 우유에 빵까지 우걱우걱 먹어치운다. 뻔할 뻔 자인 전업 작가의 살림에 엥겔지수가 가파른 기울기로 상승한다. 그래도 자기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흐뭇한 게 없다던가. 휴일엔 온종일 주방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즐겁다. 냉장고를 꽉꽉 채워 놓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설마 먹는 걸로 파산이야 하겠나?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는지 ‘배고파’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를 격려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장보기가 두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미국 쓰레기 쇠고기 수입 파문 이후 ‘생협’에 가입하면서 대형 마트에는 거의 가지 않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들렀다가 정말 기절할 뻔했다. 500㎖ 우유가 1300원대, 매운 고추 한 근에 8천원이다. 몇 달 전에는 오이 3개가 천원 정도였는데 이젠 2개에 2천원이다. 된장찌개를 하려고 두부 한 모에 감자 두서너 알만 사도 5천원, 카트에 쌓지도 못하고 바닥에 깔리게 샀는데도 계산을 하니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놀라 우둔거리는 가슴을 안고 약국에 가니 비타민제며 아이의 콘택트렌즈 소독약까지 약값도 다 올랐다. 빵은 그나마 값은 그대로지만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아졌다. 세 개를 합쳐야 전에 두 개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겠다. 아, 정말 상처 받았다. 반주라도 한잔하며 울적한 마음을 달랠 심산에 소주 한 병을 집어들었는데, 이것도 어김없이 올랐다. 도대체 오르지 않은 게 무언가? 정말로 직장인들의 월급, 내게는 원고료밖에 없는가?
물론 그 와중에도 호황인 곳이 없지는 않다. 명품 매장 앞에는 몇백만원짜리 가방을 사기 위한 줄이 늘어서 있고, 고급 식당에는 자리가 없고, 영어유치원에는 고급 브랜드의 꼬까옷을 차려입은 아기들이 넘친다. 그 풍경만 보면 그래도 불황은 아니라느니, 고환율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느니 하는 헛소리가 여전히 통할 법하다. 하긴 식민지시대에 수백만명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연해주로 떠나는 동안에도 진고개와 남촌은 연일 불야성에 활황이었으니까. 나쁜 시대에는 누군가의 불운이 누군가의 행운이 되는 일이 더욱 흔하다.
하지만 숨기고 우기고 눌러서 해결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다. 역사서에 등장하는 ‘민심의 이반’을 우려하며 경고하는 대목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개 경제적인 것이며, 좀더 세밀히 말해 ‘일상적’인 것이다. 프랑스혁명도 파리의 주부 6천명이 빵을 요구하며 베르사유로 행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식 굶는 꼴은 볼 수가 없다. 그건 내 피와 내 살과 내 뼈를 저미는 일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녀들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된다.
아파트 화단에 매화가 피었다. 세상이 난마라도 봄은 온다. 그런데 … 설탕값까지 오르면 어쩌라는 거야? 6월에는 매실을 담가야 하는데! 하릴없이 핀 꽃을 보며 한숨짓는다. 미안하다. 내 근심은, 꽃보다 설탕이다.
김별아/소설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