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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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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피사 하면 비스듬히 기운 탑으로 유명하다. 피사는 이탈리아에서 손꼽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갈릴레오가 다녔고 교수를 지낸 피사대학은 1343년 문을 열었지만 모든 중세대학이 그렇듯이 11세기에 이미 법학 강의를 한 흔적이 있다. 16세기에는 의학부가 두각을 나타내 혈액순환 발견의 선구자들인 체살피노, 팔로피오, 말피기가 모두 여기서 가르쳤다. 이제 피사대학은 교수 2천명, 학생 6만명의 큰 대학으로 발전했다. 1810년 나폴레옹의 칙령에 따라 고등사범학교가 파리고등사범학교 분교로 피사대학 안에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이탈리아 통일 직후 국립대학이 되었고 1936년부터 피사대학에서 독립해 운영되기 시작했다. 고등사범학교는 교수 120명에 학생은 500명도 안 되는 작은 엘리트 대학이다. 학부 학생은 대학의 최우등생들을 엄격한 시험으로 뽑으나 강의는 피사대학에서 듣게 하고 별도의 지도를 하며 대학원생은 자체의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한다. 학생들은 전원 학교에서 숙식을 하며 생활비까지 받는다. 이 학교의 가장 유명한 졸업생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자마자 미국으로 망명했고 연쇄반응 성공으로 원자시대를 연 페르미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르두치도 졸업생이다. 20세기에 또 하나의 대학이 피사에 태어났다. 1931년 출발한 무솔리니과학대학이 국립의학대학과 합쳐 법학·의학대학으로 되어 고등사범학교가 운영하게 했다. 여기에 파치노티응용과학대학이 합쳐 1967년 고등연구대학이 되더니 이것이 다시 산탄나여자기숙학교(1786년 개교)를 통합해 1987년 산탄나고등연구대학(Scuola Superiore Sant‘Anna)으로 독립 발족했다. 여자학교 쪽으로 올라가면 1656년에 시작한 여자기숙학교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현재 교수가 80명, 학생은 1천명이 채 안 된다. 피사 시내 한복판에 있는 14세기 베네딕토 수도원을 개조한 건물을 교사로 쓰고 있다. 산탄나고등연구대학도 고등사범학교와 같은 체제를 갖추고 있다. 두 대학이 다 학생·교수·연구원의 계속적인 교류와 상호작용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어 영국 옥스브리지의 콜리지 체제와 비슷하다. 다른 점은 고등사범학교가 순수과학과 인문학에 주력한다면 산탄나고등연구대학은 응용과학과 사회과학 중심이라는 것이다. 피사대학은 11개 학부와 57개 학과로 이루어진 종합대학이다. 그러나 두 특수 대학은 몇몇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고등사범학교는 수학·물리학·현대사·미술사·고대철학·독일철학에서 뛰어나며, 산탄나고등연구대학은 로봇공학·생명공학·심장외과학·인권법·기술혁신학에서 앞서 간다. 세 대학이 협동 운영하는 독특한 ‘피사 대학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유럽은 전통을 보존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 때문에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하는 미국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이탈리아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산탄나고등연구대학이 변신을 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대학은 사회의 진화에 주목하면서 현대화와 혁신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사회과학부의 경영 및 혁신연구소에는 정치학·경제학·경영학자들이 모여 지역개발·혁신정책·기업경영·마케팅을 집중공략하고 있으며 볼테라에 국제경영대학이 곧 문을 연다. 응용과학부에서는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데, 90년대 이후 21개의 첨단기술회사를 만들어 폰테데라에 연구단지를 건설했다. 국제화에도 적극 나서 유럽연합 안은 물론 중국과의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충칭대학에 갈릴레오연구소가, 산탄나에는 피사공자학원이 세워졌다. 유학생을 안 보낸 나라는 한국뿐인 것 같다. 피사에서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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