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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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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중국의 고서 <한비자>(韓非子)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 있다.황제가 한 궁정 화원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그리기 쉬운 것은 무엇이냐?” 화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리기 어려운 것은 개이고, 그리기 쉬운 것은 도깨비입니다.” 이에 황제는 놀라서 되묻는다. “개는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어찌 그리기 어렵다고 말하고, 도깨비는 사람 눈에 안 보이는데 어찌 그리기 쉽다고 말하는가?” 화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개는 주위에서 늘 보는 까닭에 누구나 그 모습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그림으로 그려 놓으면 사람마다 꼬리가 짧다느니 다리가 굵다느니 하면서 타박을 줍니다. 그러나 도깨비는 누구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붉고 푸른 물감으로 괴상한 형상을 마음대로 그려 놓으면 모두 감탄하면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합니다.”
이 고사에서 보는 ‘개와 도깨비’의 예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건설업 중독증’이다. 흔히 정치가들과 관료들은 멋진 개발계획을 세우고 화려한 기념물과 건물을 짓기 좋아하지만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장기적 문제들은 대처하기 싫어한다. 정부가 발표한 50조원 규모의 ‘녹색뉴딜’ 사업은 그 전형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이 사업은 포장은 ‘녹색’이다 ‘뉴딜’이다 하고 거창하게 해 놓았지만 그 실제 내용 면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한 건설투자 사업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사업의 상당수는 환경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파괴할 가능성이 있으며 대운하 사업의 기반을 닦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고용 효과 면에서도 건설업의 고용 유발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이는 건설업이 과거와는 달리 인력보다는 중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등 점차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땅값 상승에 따라 토지보상비에 들어가는 금액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의 질 면에서도 건설업은 중층적인 도급 구조와 일용직 노동자 등 전근대적인 고용 구조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으로서 저임금, 고용 불안, 낮은 숙련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건설업 집중 투자는 환경 파괴를 가져오고,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며, 고용 효과도 의심스럽고, 고용 구조를 왜곡시킬 뿐이다. 그럼에도 왜 정부는 그토록 건설업 투자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일까? 바로 다름 아니라 이것이 ‘도깨비 그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건설사업을 통해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한다는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다음 선거에서 유리해진다. 관료는 건설공사를 위한 막대한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된다. 여기에 건설업자들의 공사 수주를 위한 로비까지 가세하면 환상적인 ‘건설업 3각형’이 완성된다.
그 반면에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와 지식기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 장기요양, 보육, 교육, 복지, 금융 등의 여러 분야에서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인력, 턱없이 적은 예산, 그리고 낮은 질의 서비스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투자는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기 어려우며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소극적이다. 이것이 다가오는 미래에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 큰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인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하루빨리 건설업 집중 투자라는 도깨비 그리기를 그만두고 진정으로 국민들의 복지와 고용에 도움이 되는 사회서비스 분야의 투자에 나서도록 감시하고 촉구하는 것이 언론과 국민들이 해야 할 몫이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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