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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0 21:02 수정 : 2009.04.20 21:02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세상읽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우스개 한마디. 물가, 실업률, 다 오르는데 오르지 않는 것 두 가지는? 내 월급과 우리 아이 성적이란다. 그렇다면 물가가 오르고 수입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어디부터 쓰임새를 줄일까? 가장 먼저 줄이는 게 노부모님 용돈이요, 가장 늦게까지 챙기는 게 아이 학원비일 게다.

이런 나의 답변에는 제법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는 60살 이상 노인들 중 15%가 빈곤하였다. 노인 7명 중 1명이 최저생계에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고 난 2000년에는 그 수치가 크게 늘어, 노인 4명 중 1명이 가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통계청 자료로 서민층 노인들의 수입을 나누어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나타난다. 근로소득 등 노인들이 스스로 버는 소득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노인들의 수입원 중 유독 줄어든 것이 있으니, 그건 자녀들이 보내는 생활비였다. 자녀 용돈이 줄자, 여유가 없는 노인들은 생계에 직격탄을 맞았다. 많은 노인들의 삶이 이렇게 빈곤의 경계선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까지도 노인들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집값 상승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재산 있는 노인들의 위세가 커졌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500만 노인 인구 중 가난에 빠진 수가 100만은 훌쩍 넘으리라는 게 나의 셈이다. 가난한 노인이 늘어난 뒤편에는 자녀들의 팍팍해진 삶이 있다. 빠듯해진 살림에 눈앞의 자식부터 먹이고 가르치다 보면, 자주 뵙지도 못하는 부모님 몫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인 게다.

이런 실정을 반영이라도 하듯, 노부모 부양에 대한 국민의 의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계청 사회의식 조사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국민 중 열에 아홉은 노부모 부양을 가족의 책임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의견을 가진 국민은 넷만 남았다. 나머지는 대부분 가족과 정부·사회가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으로 옮겨 갔다. 또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자신의 노후를 자녀가 부양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빈곤 노인의 생계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에 다수 국민이 동의하였다.

노인에 대한 공적 부양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지만, 정부의 대응은 가족 부양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국민 기초생활 보장제도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으나, 부양의무자 조항으로 절반의 성공에 그쳤을 뿐이다. 자녀가 있다는 게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는 구실이 되다 보니, ‘무자식 상팔자’라는 노인들의 탄식이 그치지 않는다. 결국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부모 생활비는 가족이 제공하거나(53%) 노부모 스스로 감당하고(46%) 있을 뿐이어서, 정부의 손길을 느끼기 어렵다. 젊은 시절 노부모 모시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에는 의탁할 곳이 없게 된 지금의 낀 세대 노인들이 가장 큰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는 작년 여름부터 8만원 조금 넘는 기초노령연금 지급을 시작하여 노인의 3분의 2 정도가 그 혜택을 보게 되었다. 얼마 전 발표된 정부의 한시적 민생지원 방안에는, 자식이 있다 하여 정부 지원에서 제외된 빈곤 노인에게 월평균 20만원가량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제 이 생계구호 사업에서 6개월 시한부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한층 발전시켜 나간다면, 노인 부양에서 공적인 책임을 실천하는 작은 출발이 될 수 있다. 위기의 2009년이 공적 부양을 우선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원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희망일까?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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