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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30 18:45 수정 : 2009.04.30 19:29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세상읽기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생각 없이 먹는다. 이 나물이 상한 것인지 저 고기는 병든 것인지 의심하지 않는다. 가끔 꾸중을 듣는 반찬 투정은 입맛에 맞지 않다는 뜻이지 밥과 찬의 근본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밥상은 입만 있으면 되고 생각은 없어도 되기에 편안한 것이다.

정치란 무엇일까. 엄마의 밥상처럼 생각 없이 밥을 먹게 해주는 것이다. 노자가 “좋은 정치란 백성들로 하여금 생각은 텅 비우고 배는 가득 채우게 하는 것”(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이라고 한 말이나, <논어>에서 정치가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로서 “백성의 밥”(民食)을 꼽은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한데 우리가 생각 없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까닭은 엄마가 장 볼 때부터 밥상의 안위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 없이 먹음’에는 엄마의 노심초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의 밥상을 근심하는 사람은 정치가다. 맹자가 정치가를 두고 노심자(勞心者)라고, 곧 ‘걱정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까닭은 인민을 대신하여 공동의 식탁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이란 정치가를 믿고 생각 없이 밥을 먹는 존재인 것이다.

하면 국민이 정치의 내막을 모를수록 그 나라 정치가 잘 돌아간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수록 군인이 나라를 잘 지킨다는 뜻이 되듯이. 만약 우리가 엄마 몰래 밥상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이런 생각 자체가 엄마를 모욕하는 짓이 된다. 역시나 나라의 밥상을 의심하고 또 음식에 관한 생각이 많아지면 이것은 우리 정치가를 모욕하는 짓이다. 정치가가 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니까 그렇다.

명예로 살아가는 정치가에게 모욕은 치명적인 것이다. 따라서 광우병이라는 병명을 알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런 병에 걸린 쇠고기가 식탁에 올라오리라고 염려하거나 말하는 것은 정치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욱이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이 어떻게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과 다른지, 혹은 vCJD가 무서운지 CJD가 치명적인지를 일반 국민들이 생각한다는 것은 정치가를 지나치게 무시하는 처사다.

요컨대 광우병을 고민하고 vCJD가 무엇인지, CJD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은 정치가다. 국민들은 광우병의 내력과 그 변종들을 걱정하고 고민해주는 정치가를 믿고서, 그냥 밥상 위의 고기를 생각 없이 꿀꺽꿀꺽 먹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나라다.

그런데 지난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비롯된 쇠고기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말았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하루 전날 이미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기로 협상을 타결한 ‘생각 없는’ 처신에서부터 국민들의 밥상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광우병 전문가인 우희종 교수가 지적하듯, “국민들이 배아복제, 혹은 광우병 같은 것을 알 필요가 없다. 이와 관련된 정책 입안자들이 지킬 걸 지키면 전혀 알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들이 지키지 않으니까 문제가 되고 일반인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꼴을 두고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할 국민으로 하여금 복잡한 생각에 빠지게 하고, 또 난데없이 어려운 전문용어를 공부하도록 만든 죄는 큰 것이다. 도대체 왜 정치가가 아니라 국민이 광우병 종류에 대해 빠삭해야 하냔 말이다. 정녕코 그 책임이 병명을 알려준 방송사에 있는 것인지, 밥상머리의 안위를 맡은 정치가에게 있는지 검찰에서 조사를 해봐야만 알 수 있단 말인가! 적반하장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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