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6 21:47
수정 : 2009.05.0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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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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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에 관해서는 금융자본의 방만한 경영 행태, 부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무분별한 자산투기로 인한 거품현상 등이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 타임스>의 칼럼 기고가로도 유명한 폴 크루그먼 교수는 색다른 원인을 지적한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장문의 공개편지에서, 1980년대 이래 공화당 정부의 반(反)노조 정책으로 인한 노동조합 조직률의 저하와 이에 따른 노동자들의 구매력 저하가 현 경제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재정·금융정책 등 단기적인 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근본적으로 전국민 의료보험 보장 등 사회복지 정책의 확대와 노동조합의 조직활동 보장을 통한 임금인상 등에 의해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확보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크루그먼 교수의 이런 주장은 우리로서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크루그먼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현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다투어 노동조합에 대해 “반(反)개혁적”이라거나 “강성”이라고 비판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부의 시각에서 볼 때 노동조합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가로막는 반개혁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에 불과하며 따라서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실제로도 정부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법안의 관철을 이미 언명한 바 있고, 공기업노조 개혁의 일환으로 감사원이 공기업 감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정부 산하 기관 단체협약 평가 및 시정조처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전방위적인 ‘노동조합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까지 온 데는 노동조합 스스로도 얼마간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다. 최근 불거진 노동조합 간부의 성폭력 사건이나 부정부패 외에도 노동조합이 과연 비정규직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지나치게 투쟁 일변도의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신의 직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조합원들의 이해관계 보호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비판에서 노동조합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노조 스스로 적극적인 내부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계기로 노동조합을 압박함으로써 그 힘을 약화시키고 정부에 고분고분한 노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노동조합의 힘의 약화는 결국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되며 그에 따른 피해는 노조원들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전체 국민들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조직률 저하와 교섭력 약화에 따라 임금과 근로조건이 악화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 소득 양극화와 빈곤의 확대가 나타나게 되며, 이는 곧 노동자들의 구매력 저하를 가져옴으로써 경제회복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양극화와 빈곤의 확대는 이혼, 질병, 범죄, 알코올의존증 등 각종 사회문제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 학문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자동차가 순조롭게 운행되기 위해서는 가속페달과 브레이크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자동차의 가속을 가로막는다고 해서 브레이크를 없애버리면 그 자동차는 물론이고 그 속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노동조합은 기업경영과 국가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요구하는 브레이크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싫다고 해서 정부가 노조를 약화시키고자 할 때 우리 사회가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인지를 크루그먼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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