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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14 20:57 수정 : 2009.05.14 20:57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세상읽기

2009년 3월17일 청와대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는 “따뜻한 다문화 사회”로 21세기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성대한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간한 <2008 결혼이주여성 인권백서>는 이런 정부의 과시에 가려질 수 없는 한국 사회 이주여성 잔혹사의 일면을 보여준다. 백서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다섯 중 하나는 가정폭력을 경험하였다. 그중 절반이 당한 폭력은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이혼이나 별거 상태에 있는 여성 중에서는 44%가 신고 경험이 있었다 하니, 이들이 남편을 떠난 사연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이야 이제 낯선 일이 아니지만,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은 무려 40%라는 증가율을 보여 두드러진다. 이들의 파경에는 폭력과 편견, 빈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더욱 서러운 것은 남편을 떠난 이주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겪는 삶이다. 먼저 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2년의 체류 기간을 채우지 못한 결혼이주여성에게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법조항이다. 결국 남는 선택은 불법체류자의 신세가 되든가, 학대와 폭력의 악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니 2007년 베트남 이주여성이 남편의 구타로 갈비뼈가 18개나 부러진 채 사망한 사건을 우연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 1월에는 임신 3개월의 18살짜리 캄보디아 여성이 구타한 남편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내의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학대를 지적하는 권고안을 한국 정부에 내기에 이르렀다.

국적을 남편에게 저당 잡힌 결혼이주여성이 당하는 인권유린을, 외국인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부딪힌다. 일자리를 잃고 2개월 안에 재취업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어 있다. 실직이 출국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악덕 기업주의 행패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도리가 없다. 이제 경제위기까지 닥쳐오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더기로 불법체류자가 될 판국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이주민 정책은 사회보장에서도 차별로 이어진다. 선진국 중 가장 후진적인 복지제도를 가진 일본도 긴급한 의료지원 대상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을 제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료, 주거 등에 대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운영하지만, 불법체류 외국인에게는 혜택을 주지 않는다. 복지와 거리가 먼 미국도 가난한 영주권자에게 내국인에 준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주권자에 대한 사회보장은 아직 그 개념조차 없다. 복지 선진국, 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복지서비스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이 없다. 우리의 사회보장에서는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낯설기만 하다.

언제부터인가 정부는 외국 이주자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는 다문화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외국 이주민에 대해 이렇듯 차별의 굴레를 겹겹이 씌워놓은 채, 이들의 적응을 기대하는 것이 앞뒤가 맞는 일일까? 내국인 중심의 단일문화 사회를 혁파하는 것이 진정한 다문화 정책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최소한의 인도주의 영역에서조차 외국인을 배제하는 야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19세기 초,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는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은 여성해방의 정도에서 나타난다 하였다. 21세기 세계화 시대, 한국 사회의 문명화 정도는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포용 수준에서 드러난다고 하면 너무 앞서나간 생각일까? 2020년에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농촌 미성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까?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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