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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8 23:04 수정 : 2009.05.28 23:04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세상읽기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가 가져온 가장 큰 충격은 아마도 고용위기일 것이다.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으며, 한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희망을 잃고 있다. 이러한 고용위기는 결국 빈곤, 질병, 이혼, 범죄, 자살, 노사분규, 사회양극화, 정치사회적 혼란 등 거대한 인간적, 사회적 비극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과거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

현재의 전세계적 고용위기 가운데서 그래도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 가운데 금년 예상실업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덴마크를 들고 있다. 덴마크의 금년도 예상실업률(3.2%)은 그동안 고용창출력이 높다고 평가되었던 미국(8.9%), 영국(7.4%) 등 영미형 국가들은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유지해왔던 일본(4.6%), 한국(3.8%) 등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더 양호한 수치이다.

이처럼 덴마크가 선진국 가운데 가장 양호한 고용 실적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경제성장 면에서는 덴마크도 그다지 좋지는 못하다. 다시 말해서 덴마크의 양호한 고용 실적은 경제상황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 덴마크를 방문하여 노·사·학계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그 결과 해답은 너무나도 쉬운 곳에 있었다. 즉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는 것이 덴마크의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덴마크는 해고가 비교적 쉬운 대신, 철저한 고용보험 제도와 직업훈련을 통해 직장 복귀를 돕는 ‘유연안정성’ 모델로 잘 알려진 나라이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투자이다. 덴마크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대부분 국공립으로서 모든 교육비는 국가가 부담하는 ‘무상교육’이 원칙이다. 이를 위해 덴마크 정부는 국내총생산의 8.3%를 교육에 대한 공적 지출로 쓰고 있는데 이는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덴마크의 실업자들은 실업 후 4년간 종전소득의 90%까지 실업급여를 받고 있으며 이 기간 중 3년간은 직업훈련 참가가 의무화되어 있다. 덴마크 정부가 실업급여 및 실업자 훈련비용으로 쓰는 돈은 국내총생산의 4%에 이르는데 이것 역시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이 수치는 0.35%에 불과한데, 말하자면 덴마크는 국내총생산 대비 한국의 10배가 넘는 돈을 실업자에게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집중적 투자를 통해 덴마크는 90년대 초 10%를 넘던 실업률을 현재의 3%대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덴마크의 노사는 입을 모아 말한다. “덴마크처럼 자원이 별로 없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에서는 사람의 경쟁력밖에 믿을 것이 없다. 이는 경제위기 시기에도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 경제위기가 끝나면 경제구조와 산업구조가 새롭게 재편될 것이다. 그때에 대비해서 사람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이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고용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비정규직법과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증대시키는 데만 온통 관심을 쏟고 있을 뿐, 교육과 직업훈련에 더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소득과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해 줌으로써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원인 사람의 질을 높이는 방향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정책으로는 경제위기 이후의 세계 경제질서 재편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 세계 최고의 고용 실적을 보이고 있는 덴마크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아닐까?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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