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04 19:11
수정 : 2009.06.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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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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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메달은 획기적인 연구업적을 낸 40살 전의 젊은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30명의 메달 수상자 중 12명이 노벨상을 탔다고 하니, 노벨상으로 가는 티켓 비슷한 것이다. 이번 수상자 결정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비인기 과목인 소득불평등 분야에서 주인공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에마뉘엘 사에즈가 바로 그이다.
사에즈의 연구는 그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백만장자들의 성공담을 납세 자료를 이용하여 낱낱이 보여주었다. 1920년대에 미국 상위 1%의 부자들은 미국민 전체 소득의 24%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이들의 소득 비중이 9%로 떨어졌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다시 23%로 회복되었다.
이들 부자들의 부침의 역사는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의 시대적 변천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21세기의 극심한 빈부격차는 이들 1% 부자들이 엮어낸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부시 행정부 시기 5년간 이들 1% 부자들의 소득은 연평균 11%씩 늘었다. 나머지 미국민 99%의 소득은 해마다 1% 미만의 증가를 보였을 뿐이다. 경제는 성장했다는데 이를 체감한 사람은 없고 빈곤층은 늘기만 하는 수수께끼 같은 현실이 이어졌다.
이들 상위 1% 부자들의 운명을 좌우한 것이 세금이라는 지적도 흥미롭다. 1920년대 소득세의 최고세율은 24%에 불과했으나 누진세를 강화한 루스벨트 대통령 임기 동안 79%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1950년대 최고 부유층 1%의 소득은 전 세대보다 30% 가까이 줄었다. 2000년대 들어 소득세율은 다시 35%로 줄었고, 부자들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았다.
미국 최고 부자들의 대열에 대기업 임원 등 고액연봉자가 대거 등장하였다는 이야기도 짚어볼 대목이다. 1969년 미국 최대 기업 지엠(GM)의 최고경영자가 받는 연봉은 430만달러 정도로 당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같은 시기 자동차 노동자들 평균 보수 4만달러의 100배가 넘는 액수였다. 2005년 미국의 최대 기업인 월마트 회장의 연봉은 월마트 노동자들 연봉의 1000배가 훨씬 넘는다. 월마트 노동자들의 임금은 지엠 노동자들 연봉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월마트 회장의 연봉은 지엠 회장보다 다섯 배 이상 오른 결과다. (더욱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를 찾는 독자에게는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한국의 대표 기업은 어떠한가?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발표를 보면, 삼성전자 임원의 연봉은 79억원에 이르러 직원 평균 보수의 220배가 된다. 전체 임금노동자 보수와 비교하면 486배를 넘는 수치이다. 임원들이 이 정도이니 최고경영자의 보수를 비교한다면 우리의 1%도 미국에 크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종부세의 슬픈 운명이 이들의 밝은 장래를 예언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중간층의 소득은 거의 늘어난 것이 없다. 하위 10%의 빈곤층은 소득이 오히려 감소했다. 상위 10%의 부유층은 소득의 증가를 이루었다. 한국의 1% 부자들의 성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소득 양극화의 진정한 승자를 다른 곳에서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경제위기를 맞은 한 해 사이 저소득층의 소득이 9%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실직을 위협받는 처지에서 월급봉투 지켜내기가 만만할 리 없다. 재계는 한술 더 떠 시급 4000원인 최저임금을 3770원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의지할 곳 없는 노동자들에게 남은 마지막 버팀대마저 무너뜨릴 기세이다. 우리 사회 소득 양극화, 어디까지 치닫게 될지 심히 걱정스럽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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