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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07 21:29 수정 : 2009.06.07 21:29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국 사회는 갑자기 다가온 태풍 하나를 막 보냈다. 아니 진정한 태풍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인간들은 늘 사태가 지나간 뒤에야 그 본질을 깨닫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사상 최초의 사태로부터 배워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사후 대응’은 ‘사태 이전’에 비해 좀더 이성적이며 인간적이며 화해적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서 이후 우리는 연속된 충격을 목도하고 있다. 가장 큰 충격은 나라를 뒤덮은 추모열기로서 그것은 보수와 진보의 재임시 평가를 뒤집는 전면적 역전이었다. 이 추모열풍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특히 진보·보수 언론과 정당들에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논조와 대응은 혼란스러웠고 수시로 자기모순을 드러내었다.

둘째로 추모열기로 인한 국민과 여야 정당들의 국정기조 전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정부의 대응은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상황과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직전 대통령의 산화와 추모열기가 제공해준, 화해·통합·민주주의를 향한 이 평화적이고 절대적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국량과 리더십·사태판단능력은 안타깝고 위험해 보인다.

셋째는 사태 초기의 곤혹감 직후 드러난, 이념에 따른 빠른 자기회복이었다. 마치 ‘보수 한국’, ‘진보 한국’이라는 ‘두 한국’이라도 있는 것처럼. 특히 몇몇 극단적 보수언설들은 어떤 이념도 인간, 특히 생명 문제에 우선할 수 없음에도 보수정부의 대응마저 이념적으로 비판하며 공동체 통합을 향한 고뇌 대신 극적인 이념제일주의를 표출하였다.

이제 우린 일련의 충격들을 이성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집단충격은 개인적·사회적으로 깊은 트라우마·내상·충돌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먼저 대통령이 자신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대통령’은 어원적으로 여러 견해와 주장을 통합하는 사회자·균형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을 향해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라고 호소한, 오바마의 당선연설을 깊이 묵상해야 할 상황이다.

이 결정적 국면에 ‘집토끼론’과 같은, 국민과 대통령 모두에게 위험한 허언에 빠지기보다 국민들의 마음의 분향소를 찾아가 그들의 소리를 듣고 사정을 살펴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국민에게 마음을 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과 지도자에게 함께 충성한 율곡은 국민교화와 소통, 국가발전의 근원이 ‘최고 지도자의 몸소 실천’에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그것도 성심과 성실을 다해야만 국민을 움직이고 감화시킬 수 있다고 호소한다.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또 하나는 쏠림현상의 지혜로운 대처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500만표 차 당선’과 ‘500만 추모열기’는 극적으로 상반되는 동시에 현 정부의 문제를 드러낸 것임에 분명하나, 거시적 차원에선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한 이성적 해석과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극단적 쏠림현상은 사회개혁과 대안 없이는 언제든 재연·역전될 수 있고 수혜세력 역시 바뀔 수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쏠림현상을 낳는 근원을 해소할 정치·사회·경제·언론 개혁과 시민교육을 위한 중용적 지혜가 절실하다. 과거의 두 쏠림(노무현 증오 및 17대 대선)은 과연 이성적이었는지 살필 때 오늘의 쏠림으로부터 배워 미래의 또다른 쏠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회문제 해소를 위한 많은 이성적 대안들은 쏠림은 물론 이념조차 넘어 존재한다. 이 대비극은 지금 우리에게 깊고 길게 볼 수 있는 이성의 눈을 요구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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