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6.11 21:42 수정 : 2009.06.11 21:42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모든 문명은 강을 끼고 일어났다. 이집트문명은 나일강가에서, 인도문명은 갠지스강가에서 발생했다. 황하는 중국 고대문명의 발상지다. ‘황’은 누렇다는 뜻이고 ‘하’는 강물의 명칭이다. 물이 누런 까닭은 황토 성분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황토는 유기질이 풍부한 기름진 흙이다. 한데 알갱이가 강바닥에 쌓인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상이 높아짐에 따라 주기적으로 꼭 물난리가 났다. 황색은 풍요를 가져다주면서 또 재앙을 초래하는 상징이었다. 예로부터 치수, 곧 ‘물 다스리기’가 정치의 핵심으로 여겨진 것이나 정치의 치(治)와 법률의 법(法)이 모두 물과 관련된 글자인 것도 그 때문이리라.

홍수 설화가 전세계에 퍼져 있는 것도 문명과 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노아의 방주 설화로부터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설화, 또 인디언들의 대홍수 설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일관된 주제가 물의 범람이다.

중국 홍수 설화의 특징은 둑 쌓기와 물길 트기 사이의 다툼에 있다. 설화 속에서 최고의 토목기술자는 곤(鯤)이라는 인물이다. 물고기 알을 뜻하는 ‘곤’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그는 물관리 전문가였다. 그러나 “곤은 9년이나 말미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수 잡기에 실패한다.”(<사기>) 둑을 쌓아 물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반면 치수에 성공한 이는 우(禹)다. 그의 성공 비결은, 강의 굽이마다 수로를 따로 파서 홍수가 빠져나갈 통로를 만든 데 있다. 우는 이 성과를 계기로 끝내 임금 자리에까지 오른다. 곧 토목기술자인 ‘곤’이 실패한 것은 둑을 만들어 물과 싸우려 들었기 때문이요, ‘우’가 성공한 까닭은 물길을 터주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중국 홍수 설화의 특징은 흐르는 물을 막으면 실패하고, 터주면 성공한다는 소통의 신화라는 점에 있다. 한데 자연 속에서 물의 위상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의 처지와 같다. 말과 물의 상관성을 통해 춘추시대 정치가 정자산은 이런 교훈을 얻는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지나친 일이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말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밖으로 흘러나온다. 둘 다 흐름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물 다스리기와 사람 다스리기 역시 흐름을 원활하게 소통시키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또한 물이든 말이든 외부에서 흐름을 막으면 거꾸로 터져 나와서 재앙이 된다는 점에서도 동질적이다. 그렇다면 말길과 물길은 비유로서뿐만 아니라 이치에서도 같은 것이다. 널리 알려진 “인민은 물과 같고, 통치자는 물 위에 뜬 배와 같다”는 순자의 비유 역시 물과 정치, 또는 말길과 물길의 상관성을 밑에 깔고 있다.

서울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말을 버스로 장벽을 쳐서 가두려는 억지 짓과 수중보와 둑을 만들어 물을 가두는 식으로 강을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서로 다른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란 사람들 밖(위)에서 어떤 진리를 계몽하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사람들 속에서 형성되어 나타나는 것이 정치다. 정치란 일을 둘러싸고 말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합의가 구성되는 과정인 것이다. 또한 산천과 자연은 사람과 함께 이 세계를 구성하는 어엿한 주인공이다. 만일 국민들 바깥에 따로 정치가 존재한다고 여기고, 또 강과 물을 고작 사람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소외시킨다면 머지않아 재앙이 따를 것이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 바다.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 곧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 그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하리라.”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