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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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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상 속의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 현장은 어디에도 없고,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었다. ‘철거와 상관없이 영업합니다’라는 펼침막을 내건 식당들은 점심 장사에 바쁘고, 초여름 날 짧은 치마를 걸친 아가씨들의 다리는 눈부시게 미끈하고, 퀵서비스 오토바이는 곡예운전을 하며 지나가고, 차들은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리며 체증을 견디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죽어도 일상은 무서우리만큼 무고했다. ‘용산참사 140일 해결 촉구 및 6·10 항쟁 22주년 현장 문화제-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140인 예술행동’은 그처럼 끔찍하지만 막강한 일상 속에서 진행되었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벽시와 벽글을 쓰고,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가수들은 노래를 하고, 사진가들은 사진을 찍었다. 그곳에선 슬픔도 분노도 투쟁도 일상이었다. 분향소에서는 화분들이 꽃을 피우고, 용역들은 틈틈이 밥값을 하기 위해 시인과 화가들이 벽에 붙인 꽃장식을 뜯었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유가족은 만화가들이 그려준 캐리커처에 웃고, 포크록과 풍물이 민중가요와 어울렸다. ‘도심 테러리스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온 눈이 예쁜 젊은 신부님은 낮술에 취해 있던 시인들과 순댓국밥을 나눠 먹었다. 길바닥에서 먹고 자고 싸우느라 새카맣게 타버린 송경동 시인은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난 게 반가워 연방 벙싯거렸다. 우리도 평소대로 술타령만 말고 뭐라도 해야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시인과 작가들은 술 먹는 게 투쟁이지! 여기서 이렇게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는 여전히 투사이기 전에 시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싸우면서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실로 그가 있어야 할 곳은 평화로운 시인의 마을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기에 그 길모퉁이 살벌한 참사현장이 시인의 마을이다. 억울한 영혼들의 의로운 벗, 그가 바로 시인이기에.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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