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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8 21:55 수정 : 2009.06.18 21:55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장면 1: 경영위기에 빠진 자동차회사가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반발한 노동조합과 해고 대상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간다. 해고 노동자 가족들도 이에 합세하여 공장에서 천막농성을 한다. 회사 쪽은 비해고 대상자들을 동원하여 공장 진입을 시도함으로써 폭력사태 일보 전까지 간다. 해고 노동자들은 굴뚝 농성에 들어간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불법파업’ 해산을 요구하는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장면 2: 경영위기에 빠진 자동차회사가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반발한 노동조합과 해고 대상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간다. 해고 노동자 가족들도 이에 합세하여 공장에서 천막농성을 한다. 정부는 대규모 경찰력과 중장비를 동원하여 공장 진입을 시도함으로써 노동자들과 충돌이 빚어진다. 해고 노동자들은 굴뚝 농성에 들어간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불법파업’ 해산을 요구하는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데자뷔’라는 말이 있다. 지금 눈앞에서 보는 현상을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기시감’을 말한다. 앞의 장면 1은 2009년 현재 쌍용자동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이미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당시 거의 동일한 장면 2를 목격한 바 있다. 당시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비치던 해고 노동자의 어린 자녀 모습이 현재 쌍용자동차에서 농성중인 해고 노동자의 자녀 얼굴과 오버랩된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1998년 당시 현대자동차는 경영위기에 빠지기는 했지만 회사가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곧바로 자동차 경기가 회복되면서 정리해고자들도 모두 복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9년의 쌍용자동차는 전 주인이던 상하이자동차가 한국의 자동차 기술만 빼먹은 채 철수한 뒤에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감으로써 사정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졸속 매각과 경영 부실 책임이 더욱 무겁게 추궁되어야 할 이유이다. 다른 점은 또 있다. 1998년 당시에는 노무현 국민회의 부총재를 단장으로 하는 합동중재단이 울산 현지에서 적극적인 노사간 중재활동을 하였고 이 중재안을 노사가 수용함으로써 극적으로 사태는 타결이 되었다. 반면 2009년 현재 정부 여당은 쌍용차 사태에 대해 어떠한 중재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1993년 독일의 국민차 회사인 폴크스바겐사는 판매량 급감과 대규모 적자로 경영위기에 빠지자 무려 3만명의 정리해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장 점거도 경찰력 진입도 없었다. 노사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지 4주 만에 정리해고 없이 회사를 살리는 협정에 합의했다. 그 핵심은 사쪽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근로시간 단축과 이에 따른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고 노동 유연성을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노사 합의에 따라 노동자 소득은 최고 16%까지 줄어들었지만 이후 노사의 노력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품질이 개선되면서 판매량과 수익이 급증하였다. 폴크스바겐사는 10년이 넘는 개혁을 통해 현재 세계 자동차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성장을 지속하는 탄탄한 회사로 변신하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주기적인 불황은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불황에 빠졌을 때 어떻게 노, 사, 정이 그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어 질 것이며, 어떻게 새로운 성장동력을 되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1998년 현대자동차 사태 이후 11년이 지났건만 우리가 불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을까? 1998년, 2009년, 그리고 1993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숫자들이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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