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25 22:37
수정 : 2009.06.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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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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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치권에서 소득 양극화를 둘러싸고 한 차례 소동이 일었다. “새 정부 들어 빈부격차가 개선되었다”는 정부 인사들의 생뚱맞은 주장에 야당의 반박이 이어졌다. 분배 개선의 공을 차지하려는 정치인들의 행태야 코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정작 우스꽝스러운 것은 그들의 자화자찬이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한 데에 있다. 양극화 완화를 정치적 선전거리로 써먹기에 앞서 사태의 진실을 차분히 새겨보았어야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의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을 나타내는 소득불평등 지수)는 0.31 정도로 2007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참여정부 시기 내내 불평등이 조금씩 악화되는 추세가 지속된 점을 생각한다면, 새 정부에서 불평등 수치가 커지지 않은 점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도 들 만하다. 하지만 지니 수치 하나로 양극화 완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또 양극화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졌다면 정작 서둘러야 할 일은 그 이유를 따져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최근 우리 사회의 양극화 추세는 시장 불평등과 정부 복지지출 간 달리기 경쟁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2003년에서 2007년에 이르는 참여정부 기간 내내 시장소득의 불평등은 악화했고, 이런 추세는 2008년에도 별로 누그러들지 않았다. 시장 불평등 증가에 맞서 참여정부는 복지지출을 꾸준히 증대했지만, 번번이 시장 불평등의 증가 속도보다 한 발짝씩 늦었다. 시장 양극화를 압도할 만큼 과감하게 복지를 확대하지 못하였고, 참여정부는 집권기간 내내 양극화 책임론에 시달렸다.
2008년에 들어서서 양극화가 누그러드는 기미가 나타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달리기 경주에서 내내 뒤처지던 정부 지출이 시장이 밀어붙이는 불평등의 힘을 조금씩 따라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참여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양극화와의 싸움에서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많이 했다. 2008년에 실시된 기초노령연금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굵직한 제도들이 모두 참여정부가 이루어낸 결실이다. 올 하반기에 처음 지급되는 근로장려세까지 생각하면 그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 정부 인사들은 분배 개선의 조짐이 새 정부 들어서 나타났다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2008년 정부 지출이 전년도에 참여정부가 편성한 예산이 집행된 결과라는 점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따라서 2008년에 조금이라도 분배상태가 나아진 게 있다면, 그건 참여정부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는 소득 양극화에 재갈을 물리는 데 과연 성공했는가? 지난 10여년의 큰 흐름을 바라보면, 불행히도 현실은 그 반대다. 정부가 참여정부보다 잘했다며 공을 다투는 그 순간에, 한국 사회는 국민 100명 중 15명이 가난의 굴레 속에 살아가는 최대 규모의 빈곤 현실에 부닥치고 있다. 90년대 중반 10%를 넘지 않던 빈곤층(중위소득 50% 미만 계층)이 외환위기를 거친 2000년에는 13%로 뛰어올랐고, 2008년에는 다시 15%를 넘어섰다. 눈앞의 미래는 더욱 걱정스럽다. 올해 들어서서 평균 가구소득은 감소하기 시작했고, 특히 하위 계층의 소득이 큰 폭으로 줄었다. 더욱이 임시·일용직의 실직과 영세 자영업자의 파산이 이어지고 있다.
소득 감소와 불평등 악화, 빈곤 증가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악성 양극화가 어디까지 치달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분배 개선을 위한 정부 재정의 역할이 이보다 절실한 때가 있을까? 그런데 정부는 감세와 재원 감소로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있다. 이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말장난 정치를 그만두고, 진정 서민의 삶을 보살피는 정책 전환을 고민할 때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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