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28 21:34
수정 : 2009.06.2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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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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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가장 긴 위기상황인 북핵문제가 또 하나의 고비에 다다랐다. 20년간 악화와 잠정해결을 반복한 사안이 다시 갈림길에 놓인 것이다. 이 중대 고비를 맞아 이명박 정부는 평화 안착, 북핵 허용, 대치의 지속과 악화, 갈등의 폭발 사이에서 절대명제인 북핵 불용과 전쟁 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보다 ‘한미동맹 강화-남한 배제-남북관계 악화’를 결합한 ‘김영삼 모델’로 돌아가선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현재 이 길로 들어선 것은 국익을 위해 위험해 보인다. 북핵문제에 한정하더라도 김영삼 모델은 ‘남한 배제-불완전한 사태해결-막대한 경제부담(11억4000만달러)’이라는 삼중의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였다.
남한이 참여하지 않는 한반도 평화와 안보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한국전쟁과 북핵위기를 잠정 극복하였던 두 안보체제인 1953년 정전체제와 1994년 제네바합의체제가 불완전·불안정하였던 근본 연유는 남한이 불참·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북한에 대한 적의가 넘치고 한미동맹이 공고하더라도 남한이 한반도 평화 건설과 위기 해소 과정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이승만(53년)-김영삼(94년) 사례에서 보듯, 그러지 않고는 궁극적 해결은 어려우며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평화적 해결을 추구할 때 북한 배제 역시 바른 해법이 아니다. 그럴 경우 북한은 외려 독립적 영역과 시간을 갖고 핵무장을 포함한 자기 길을 갈 것이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여 증오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증오로 인해 홀로 떼어놓을 경우 악은 더 자라난다. 때론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이른바 ‘증오의 역설’로서 분단국가처럼 ‘피할 수 없는 관계’일 경우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아무리 미워도 상대를 떼어놓아선 안 된다. 남한이 핵과 전쟁을 저지하고 평화와 통일을 달성해야 할 대상은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이념적 이유로 김대중·노무현 방식은 수용하지 않더라도, 같은 보수정부 사례 중 김영삼 모델이 아닌 노태우 모델을 차용하자. 후자의 요체는 동맹강화(미국), 적대정상화(중·러), 관계개선(북한)이라는 삼중 외교안보 국가과제의 동시추구였다. 우선 과거의 적대국가인 중국·소련과 수교를 결행하였다. 그러면서도 한미동맹을 약화시키지 않았다. 한국의 국가전략에서 한미동맹은 기본 상수로서, 대립국가를 접근·활용하려면 강화를 굳이 천명할 필요가 없다. 한미동맹 강화, 한중·한소수교 단행에 더해 노 정부는 유엔 동시가입,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총리회담을 포함한 각종 남북회담 실시 등 남북관계 개선에도 성공적이었다. 노태우·이홍구·서동권·박철언·이상옥·김종휘 등 노태우 시기 외교안보 핵심들을 만나고 자료를 찾아 삼중과제 달성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특별히 한중 접근과 활용이 긴요하다. 현재 중국은 남북 모두의 제일 교역대상이자 북한의 제일 안보동맹이다. 중국만이 남북 모두와 이런 특수관계를 맺고 있다. 2004년 이후 남한은 사상 처음 미국을 제일 안보동맹으로, 중국을 제일 교역상대로 갖는 특수상황을 맞고 있다. 2008년 한중무역은 한미의 2배이며, 북중무역은 북한 전체의 50%에 달한다. 즉 중국 역할과 중국 활용 없이는 북한 설득과 압박, 북핵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 모두 어렵다. 그렇다면 한미의 내부 숙의를 통해 이제 한반도 안보·평화의제에서 중국에 상당 지분을 ‘넘겨주며 끌어들이는’, 제2의 한중수교에 버금가는 혁명적 접근이 필요할지 모른다. 무엇을 넘겨주며 끌어들일 것인가? 북핵 극복과 한반도 평화를 향한 한미의 큰 지혜를 기대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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