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02 21:26
수정 : 2009.07.0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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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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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는 우화가 많다. 임금과 수레바퀴 장인의 대화도 그중 하나다. 제나라 환공이 마루에서 책을 읽고 있다. 마당에서 수레바퀴를 만들던 늙은 장인이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 환공이 “옛 성인의 말씀”이라고 답하자, 장인은 “이미 죽은 성인들의 말씀이라면 그건 말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되받는다.
환공이 화를 내자 장인은 제 경험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바퀴 구멍에 바퀴살을 맞춤하게 끼우는 섬세한 작업은 짐작으로 터득해서 마음으로 느낄 뿐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자식에게도 전수하지 못하니 늘그막에도 이렇게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처지다, 옛 성인이 터득한 정치적 지혜도 말로 전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읽고 있는 그 책도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하리라는 것이다.
이 우화는 ‘일의 이치, 곧 진리는 말로 담을 수 없다’는 장자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또 사람의 마음을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언어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 것으로도 읽힌다. 나아가 ‘일의 세계는 말의 세계와 서로 다르다’는 의사의 표명으로도 읽을 수 있으리라.
<논어>에는 대화가 많다. 공자와 자로의 대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자로가 묻는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총리로 임명한다면 무엇부터 하시겠느냐?”고. 공자는 “정명(正名), 곧 말뜻부터 바로잡겠다”고 답한다. 이에 자로는 “할 일이 많은 터에 말뜻을 바로잡겠다니 무슨 비현실적인 말씀이냐”고 혀를 찬다. 그러자 공자는 화를 내며 말한다. “말뜻 곧 개념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소통되지 못하면 일을 이룰 수 없는 법”이라고.
이 대화는 ‘일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말이 통해야 하고, 또 말이 통하려면 말뜻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자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이는 또 말의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말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정치의 운명성을 지적한 것으로도 읽힌다. 나아가 ‘일의 세계는 말의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사의 표명으로도 읽을 수 있으리라.
이명박 대통령은 말을 혐오하고 일을 선호하는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장자와 공자 가운데 택하라면 장자 쪽이라고 할까? 최근의 실용과 중도, 그리고 ‘서민정치’라는 구호와 시장방문 행보도 시장 곧 ‘일의 세계’를 정치의 마당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셈이다. 여기 일의 세계는 장자가 잘 지적했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과 기예가 통용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장인들은 말이 어눌하고 글에 서툴다. 곧 ‘일의 세계는 말의 세계와 다르다.’
한데 일이 말로 표출되지 못할 때, 사회는 각각의 욕망들이 싸우는 정글로 추락한다. 이 점에서 정치는 일의 세계가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과 원망을 말로써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곧 정치는 일과 일 사이를 말로써 통하게 만드는 것이 ‘일’이다. 그렇다면 일과 말이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본 공자가 옳다. 정치는 운명적으로 말의 세계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공자라면 오늘 우리 정치의 문제를 대통령이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로 구사하는 능력에 있다고 지적할 것이다. 가령 진보·보수·중도, 민주·공화, 그리고 실용처럼 비근한 말뜻부터 그렇다. 일의 세계의 장인들과 시장의 서민들은 어눌해도 좋지만 정치가는 정명, 곧 말에 정확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들을 말로 표출하고, 또 소통시키는 것을 일로 삼는 사람이 정치가인 것이다. 그저 빈번한 현장 방문만으로는 정치가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예감도 이 때문이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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