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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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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께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 300억원이 넘는 개인 자산을 기부했다고 한다. 참으로 보기 좋은 일이며, 기부 문화가 낯선 우리 사회에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더욱이 그분은 강남의 유명한 대형 교회 장로님이며, 깊은 신앙심으로 말미암아 예전에는 자신의 소유도 아닌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납하겠다고까지 하신 분이니 당연히 자신의 재산이야 아무 조건 없이 공익단체에 기부할 것으로 생각했고 이는 자라나는 후속세대에 매우 바람직한 모범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기부의 내용을 보니 예상했던 모범적 사례와는 너무도 거리가 있다. 재산을 기존의 공익사업에 기부하기는커녕 자체 재단을 만들고, 재단 인사들 가운데는 자신의 측근과 지인, 심지어 인척까지 있다. 그렇다면 단지 개인 재산의 관리 형태를 보기 좋게 포장한 것에 불과할지 모르며, 그동안 특정 계열 인사들로 관리되어 온 어떤 장학재단의 짝퉁 같기도 하다. 물론 큰 뜻으로 재단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출연과 운영의 철저한 분리인데 현재 구성이라면 그 점이 지켜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재단 이름에 자신의 아호를 붙였다니 이 기부 의도에 누구나 의문을 갖게 된다.
이번 기부가 액수가 많아서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비록 억 단위의 돈은 아니라도 평생 모은 돈을 아무 조건 없이 좋은 일에 써달라며 기부하는 가난한 할머니들과 너무도 대비된다. 더욱이 출연자는 매우 빈곤하게 성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300억원이 넘는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그 많은 돈을 주위 도움 없이 자기 힘만으로 결코 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부에 즈음하여 언급했듯이 왼손도 모르는 것이 진정이라면 지금과는 달리 좀더 순수한 형태의 사회 환원을 했어야 한다. 자신의 말이나 신앙과도 달리 재단 설립에 자신의 호를 사용하고 측근과 인척까지 재단 이사에 넣다니 주변에서 진정한 기부가 무엇인지 일러줄 사람이 그토록 없었는지, 아니면 소속 교회의 목사님은 과연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궁금해진다.
좋은 뜻의 이번 기부가 국내 기부 문화의 모범을 보여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되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도 모범이 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삶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스러운 신앙인의 자세를 보이고자 한다면 최소한 재단의 인적 구성은 출연자와 관계없는 이들로 하고 스스로는 재단 업무에 일절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의 소통 부재나 종교적 편향에 불편해하던 이들마저 비록 견해는 달라도 대통령의 진정성에 새삼 공감하며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안 되던 소통을 굳이 새삼스레 왼손과 오른손에 적용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모습이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 해도 당신의 이기심에 불과하지 않으냐는 유치한 질문에 대통령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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