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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24 19:48 수정 : 2009.07.24 19:48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오래전 조카가 어린이날 기념으로 디즈니 영화인 <판타지아>를 보았다. 그중 ‘마법사의 제자’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지 꼬마 시절에 본 것을 나중까지 기억했다. 폴 뒤카의 기지 넘치는 음악도 금상첨화였다. 동화로도 널리 읽히는 이 이야기의 원작은 잘 아는 대로 괴테의 시다.

마법사가 외출을 하자 그 제자가 스승의 마법을 흉내 내 신령스러운 힘들을 부리기 시작한다.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주문을 외워, 빗자루로 하여금 강에 가서 목욕물을 길어 오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목욕탕에 물이 다 찬 다음 빗자루에 중단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제자는 그 주문은 미처 익혀두지 못했다.

“멈춰! 멈춰! …/ 아! 내 정신머리. 에구구!/ 주문을 잊어버렸네!/ 아! 저 빗자루 제자리로/ 돌려놓을 주문을 잊었네!/ 어이쿠 저 빗자루, 뛰고 달리고 물 길어 오네!/ …… /아! 백 줄기 물이/ 내게 쏟아져 들어오네!”

마법사의 제자는 자기 능력을 넘는 초자연적 힘을 불러낼 줄은 알았지만 이를 진정시키고 거두어들이는 능력은 가지지 못했다. ‘내공’이 턱도 없이 부족했으니까.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면 통제받지 않는 빗자루가 사방을 휩쓸고 다니는 것만 같다. 용산참사, 전임 대통령의 서거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쌍용자동차 사태의 합리적 해결 길이 보이지 않고, 대운하는 중단하지만 더 많은 예산이 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꼭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때문에 강을 진정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있다.

7월22일 국회의 미디어법 처리는 마법사의 제자가 주문 외우듯 비법을 구사한 집권세력의 또 하나의 작품이다. 비법이란 별게 아니라 수와 물리력이었다. 국회는 전경들로 물샐틈없는 방벽을 둘러싸 국민의 출입을 통제한 가운데 미디어법 통과 강행의 현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력을 행사하며 법안을 처리했다. 투표 종료를 선언한다는 발언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는데도 그 직후 재투표가 감행되었고, 의안 통과가 발표되자마자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대리투표 논란이 일었다. 입법의 전당에서 불법 의혹이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 법은 좋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되었고 18대 국회의 공신력은 상처를 받았다. 이날, ‘4대강 살리기’ 같은 국책사업의 쟁점들을 논의하는 국회토론회에 참석하고자 여의도에 갔던 동료 교수 한 분은 앞을 가로막는 전경들 사이를 소리치고 다니며 애원하고 항의한 끝에 겨우 ‘민의의 전당’ 출입을 허용받았다. 22조의 예산을 운운하는 사업의 타당성을 논하는 자리에, 핵심적 위치의 담당 관리는 오지도 않았다. 열 명도 안 되는 참석자들과 맥없는 토론회를 하고 나오는 길에 “국회로 오세요” “국회의 주인은 국민입니다”라는 글귀를 써붙여 놓은 국회 셔틀버스를 보며, 그는 비현실적 상황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집권세력도 마법사의 어설픈 제자처럼, 들깨워놓은 사회적 갈등이라는 넘쳐흐르는 물을 거두어들일 주문을 모르는 것일까. 정치란 말과 설득의 예술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 수준의 행위를 뜻한다고 믿는 정치철학자들이 적지 않다. 보수정당들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으면서도 야당과 국민을 합리적 토론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논란 많은 방식으로 법안을 처리했다면 그것은 정치가 정치답지 못했다는 뜻이고, 책임은 힘의 소유자인 집권세력에 있다. <마법사의 제자>에서는 스승이 돌아와 혼란을 정리해 준다. 우리 사회에는 외출에서 돌아와 줄 스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반대세력과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빗자루를 되돌려놓을 주문이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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