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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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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권력자들의 무능과 무지를 통렬하게 비판한 허생전의 이 대목은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기 위한 개혁정책이 기득권층의 반대에 부닥쳐 실패하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허생이 제시한 계책들은 모두 당시의 특권층인 양반층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민감한 방안이었기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만약 허생이 다시 살아 돌아와서 오늘의 한국 현실을 본다면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생경제를 구하기 위해 과연 무슨 계책을 내놓을까 상상해 본다.
허생: 일부 기득권층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널리 여론을 수렴하고 천하의 인재를 모아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정부: 불가하오.
허생: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정책과 건설회사 배만 불리는 토목사업을 중단하고 그 예산을 돌려서 민생경제를 구하고 복지지출을 늘리는 데 쓸 수 있겠는가?
정부: 불가하오.
허생: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세우고, 재벌들의 무분별한 점포 확장으로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들을 위해 영세자영업자 보호정책을 실시할 수 있겠는가?
정부: 불가하오.
허생: 예끼, 그러고도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부·여당은 미디어법 파동을 수습하고 국면 전환을 위해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서민 주거 안정, 소액대출 확대, 일자리 창출 등은 나름대로 효과가 어느 정도 있겠지만 핵심적인 정책들은 아니다. 그렇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계책이 모자라고 수단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계책과 수단이 대부분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데 정부·여당이 이들의 이해관계 보호에 치중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 때문에 230년 전 허생의 계책을 당시의 권력층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태어난 허생의 계책 역시 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하다.
부자 감세 철폐, 토목사업 집중투자 중단,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 규제,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보호대책 수립 등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정책들은 쏙 빼버린 서민생활 안정대책, 그것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나 할까. 230년 전의 허생은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홀연히 종적을 감추어버렸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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