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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31 19:33 수정 : 2009.07.31 19:33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8월30일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열도는 뜨거운 8월을 맞고 있다. 더욱이 전후 일본 정치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선거다. 아직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관심과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지난주 강연차 방문한 삿포로시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은 “홋카이도 전승(全勝)”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옛 사회당 시절부터 농민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전통적으로 야당이 강하며 현재도 민주당이 다수파를 차지하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정권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에 부는 바람이 너무 강해서 그 반작용이 일거나 ‘거품’처럼 꺼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들이었다.

물론 ‘바람’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즈음 매스컴에서 매니페스토라는 용어를 접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각 정당이 선거 공약을 구체적인 정책구상으로 발표하는 매니페스토 선거가 정착한 느낌이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양대정당제와 정책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방식이 확립된 영국을 모델로 정치개혁을 추진해 왔다. 소선거구제와 당수토론 등과 더불어 매니페스토 선거도 그 일환이었다. 원래 말뜻은 “선언” “성명”이지만 여기서는 정당 또는 후보자가 선거 때 제시하는 공약과 정책구상을 의미한다. 종래 한국이나 일본에서 사용되던 ‘선거공약’과 의미상으로는 같지만, 내용적으로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정책 목표와 그 실현 시기, 방법, 재원을 구체적인 수치 목표와 더불어 제시함으로써,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사후 검증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선거 매니페스토가 일본에 도입된 것은 1999년 통일 지방선거 때부터다. 일부 개혁파 지자체 단체장 후보들이 매니페스토를 제시한 것을 계기로 2003년 총선거 때부터 전국 선거에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매니페스토 방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통합 야당으로 출범한 민주당이었다. 수권정당으로서 정책 능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수단으로 중시된 것은 물론이다. 이와 더불어 옛 사회당 출신에서 자민당 탈당파까지 당내에 다양한 성향의 그룹이 공존하는 민주당이 내부의 정책대립을 최소화하고 대외적으로 통일된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도 컸다. 실제로 매니페스토를 내걸고 몇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오합지중”(烏合之衆)이라 야유되던 민주당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이미지와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금이나 의료 등 생활과 직결된 사회복지 문제에 전문성을 지닌 ‘정책통’의 민주당 의원들도 새로운 유형의 정치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자민당 “일당 우위체제”가 약체화되면서 집권 능력을 갖춘 통합 야당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 지난 수년간의 일본 정치는 흥미 깊은 사례를 제공한다.

각 정당이 다투어 내놓는 매니페스토지만 그 내용의 충실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이를 자세히 읽고 이해하는 유권자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매스컴들도 각 정당의 정책을 비교 분석하는 보도에 비중을 두고 있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주부층을 상대로 한 낮시간의 프로그램에서도 “매니페스토 방담”이 전개되는 등 유권자의 정치의식 향상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각 정당의 매니페스토를 비교 평가하는 시민단체가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매니페스토 연구소를 개설한 대학도 있다. 정책은 정치가와 관료에게 맡겨두고 국가의 결정에 따르기만 하던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도 “유권자 민주주의”로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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