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9 20:26
수정 : 2009.08.0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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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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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북과 2명의 기자 석방은 남한 정부엔 일종의 ‘클린턴 쇼크’라고 할 만하다. 또는 미국 정부의 동의 아래 추진되었다는 점에서는 ‘오바마 쇼크’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는 이명박 정부에 “정치적 이념적 이유로 김대중·노무현 모델을 배척하더라도, 김영삼 모델이 아닌 노태우 모델로 나아가라”, “국제문제·지역문제인 북핵문제의 본질을 고려해 상황과 해법을 정말 크게 보라”고 제언했던 필자 개인에게도 충격이었다.(6월29일, 7월20일치 ‘세상읽기’ 참조) 실제 상황이 너무 빨리 다가왔기 때문이다.
클린턴 쇼크의 진정한 이유는 이번 방북과 석방을 통해 북한·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 나아가 한국과 미국의 관견과 이익과 접근 양태가 김영삼-클린턴 조합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당시처럼 이번에도 믿었던 한-미 동맹 라인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즉 한쪽은 적대와 이념을 이유로 하염없이 동맹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큰 동맹은 국익과 실용을 내세워 작은 동맹을 배제한 채 적과의 직접 접촉과 대화를 통해 이익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야, 우린 대북제재와 압박에 동참하느라고 접촉도 자제한 채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데, 왜 너희만 공조를 깨고 국민을 석방해 오냐”고 따질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강한 제재 국면에서 일련의 물밑접촉을 통해 자국 국민을 송환해 왔다. 북한 역시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에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물밑접촉을 지속하고, 클린턴 방북을 수용하며, 클린턴-김정일 면담과 대화를 통해, 억류한 기자 2인을 석방하였다. 상호 대화와 이익을 위해 이념과 적대를 넘는 미국과 북한의 이런 행태는 이념을 위해 국익을 저당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북핵 해결 유일주의를 고수하느라 자국 국민 피격사건의 진상조사와 사과 요구 실현, 북한 억류 국민 송환, 대북접촉, 경제교류 등 거의 모든 사안을 희생하지 않았는가?
클린턴 쇼크는 표면적으로는 반북 기조와 한-미 동맹 강화에 바탕해 우리 정부가 철저한 대북제재와 한-미 공조만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문제에 진전이 없는데도 북한과 미국은 남한을 배제한 채 양자 비밀접촉과 클린턴 방북, 클린턴-김정일 면담, 여기자 석방을 전격적으로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으로는 제재를 주도해온 미국이 제재와 접촉을 병행해 국가의 국민보호와 국익추구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실용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북접촉과 교류를 제재와 상반되는 금기로 여겨 ‘이념 유일’ ‘제재 유일’로 달려온 이명박 정부로선 과연 미국의 제재 의지와 한-미 공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타산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자국 국민 2인의 보호 또는 그 이상의 실용과 국익을 위해 북한·북핵문제에서 한국과 미국의 이익과 접근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안과 거시 정책은 자주 다르다. 예컨대 미국의 독자행동은 기자 석방에 그치지 북핵문제 해결에서 한-미 공조는 흔들림이 없다며, 정부는 위안을 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는 게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이다. 즉 거시 이익을 위해 현안은 활용·이용될 수 있으며, 국익을 위해 공조는 희생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읽기를 통해 수차 한반도·북핵·북한문제를 크게 보자고 하였을 때는 이념의 틀로 해결하기에는 이 문제가 너무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세상읽기부터는 이 본질을 크고 깊게 짚어보고자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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