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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13 20:34 수정 : 2009.08.13 20:34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광장은 인위적인 공간이다. ‘만든다’는 행위는 보통 빈터를 채우거나 사물을 깎아내는 것인 데 비해 광장(廣場)은 일부러 만든 빈터이니 유다르다. 광장은 인공적인 빈터라는 점에서 자연이 만든 빈터인 광야(曠野)와도 다르다. 광야의 주인은 자연이지만 광장을 채우는 것은 사람이다.

광장은 축제와 상거래의 마당이자 정치와 종교의 장이다. 그리스 아고라가 말과 토론의 정치적 광장이라면, 바티칸의 광장은 기원과 제사의 마당이다. 한데 우리네 전통에서는 광장도 광야도 없었다. 그리스 아고라 같은 정치적 광장은 더욱 그렇다. 신라 화백제도의 개최지도 공개적인 장소는 아니었고, 여섯 부족 대표들이 모여 새 임금을 찾는 회의도 외진 강가 언덕에서였다고 전한다.

이 땅이 산과 구릉으로 이뤄진 곳이라서 광야라 부를 만한 너른 터가 없는 것도 그러했다. 조선 후기 중국여행에 나섰던 박지원이 요동 땅에 이르러 툭 트인 땅을 보고선 ‘목 놓아 통곡하고 싶은 곳’이라는 감회를 남길 정도였다. 광야는 예수가 고난을 겪어낸 땅으로서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이미지요, 광장은 서구 문명의 한 상징으로 전래된 것이다. 광야는 이육사의 시 ‘광야’를 통해 새 시대를 열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또 광장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통해 자유와 해방의 은유로서 정착한 것이다.

실물로서의 광장 역시 식민지 도시계획에 따라 역전이나 시청 앞에 이식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니 그 주인공은 타인이었다. 식민지 시절 그곳은 징병과 징용을 강요하는 관제집회의 마당이었다. 해방 후에도 반공궐기대회니 무슨무슨 규탄대회 같은 동원과 강제의 장소였다. 아마 우리가 만든 최초의 광장이지 싶은, 여의도공항 터를 바꾼 5·16 광장은 더욱 그랬다. 그곳은 ‘국군의 날’, 전차들의 캐터필러 굉음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위에서 아래를 지켜보는 눈길과, 지시하고 가르치는 목소리로 가득 찬 타인의 자리가 우리네 광장의 실정이었다.

최근 서울 광화문 앞에 새 광장을 열었다. 시민광장의 필요성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거치면서 결집된 자발적 모임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때 우리에겐 길만 있지 광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시민들의 환호와 탄성, 그리고 몸짓들은 한길 위로 흐르다가 곧 증발되고 말았다. 축제마당에 대한 열망이 시청광장을 만들고 이제 광화문광장을 열기에 이른 것이다.

하나 ‘문화행사만을 허가한다’는 서울시청의 엄포는, 광장의 주인이 아직도 권력이라는 선언이다. 겉으로는 시민들이 산책하고 또 ‘문화공연’이 행해지는 발밑에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감시하는 권력의 눈길이 깔려 있음을 드러낸 셈이다. 이런 곳은 참된 시민의 광장이 아니다.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1988)에는 광장이 배경으로 나온다. 특이하게도 그 광장에는 주인이 있다. 늦은 밤, 영화관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 등을 떠밀며 “광장은 내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광인(狂人)이 그다. 하나 누구도 그를 두고 시비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광장을 제 소유라고 주장하는 미친 사람조차 받아들일 때라야 참된 광장이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제대로 된 광장이 없었던 우리에게 광화문광장은 여러모로 반가운 ‘건축물’이다. 하나 질서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언행이 제어되는 공간이라면 그건 본래의 광장이 아니다. 광장은 그 자체로 빈터다. 그러니 광화문광장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다. 광장이 권력으로 가득 찬 ‘광야’가 될지, 광인의 허튼 말조차 허용되는 자유공간이 될지는 시민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마 광장과 광야의 차이점은, 광장의 속살이 너무나 정치적인 공간이라는 데도 있으리라.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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