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14 19:53
수정 : 2009.08.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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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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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향가 중에 <안민가>라는 게 있다. 경덕왕이 충담사에게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릴 노래를 지어 달라고 부탁하자, 충담사는 백성들이 ‘이 땅을 버리고서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한다면, 그리될 것이라 했다. 정치의 본질을 두루 꿰뚫는 멋진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1200년이 흐른 지금, 이 나라에는 ‘할 수만 있다면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이 참 많다. 무엇보다 국가 권력에 대한 절망이 넓고 깊다. 이를테면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의 인터뷰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진압 장면을 담은 <와이티엔>(YTN) ‘돌발영상’을 보고 난 뒤에는 저런 경찰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내는 일에 대해,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그야말로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가끔 신문에는 국무회의 때 국민의례를 하는 사진이 실릴 때가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정면 국기를 비장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건한 애국자의 포즈다. 그런데 가끔 나는 그런 사진을 보면 이런 돼먹지 못한 질문들이 떠오른다. ‘저분들, 세금은 꼬박꼬박 내셨을까? 자제분들 군대는 옳게 다녀왔을까? 저분들 중에 농사짓지도 않으면서 농민 행세를 한 분은 없겠지?’ 등등. 저들의 애국심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동안 겪은 일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랬던 것이리라.
농담 삼아 몇 마디 거들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해본 적은 없다. 좋든 싫든 이 땅에 살면서 얻게 된 모든 감각과 인연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제 내 몸에 완전히 익어버려서 떨칠 수도 없다. 그런데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켜보면서 처음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그 질문의 본질은 분노와 수치심이다. 힘없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시민이 아니라는 것. 공공의 질서와 안녕(이라고 저들은 말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질서이고 안녕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을 해치는 힘은 박멸당해 마땅한 존재가 된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정말, 물도 전기도 의약품도 공급해선 안 되는, 최루액과 테이저건과 방패와 곤봉과 군홧발로 짓이겨도 괜찮은 괴물이자 폭도였을까.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금도 잘 내고, 가짜로 농민 행세도 하지 않았고, 군대도 다녀온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외쳤던 것은 ‘함께 살자’는 것이었다. 검찰총장이 될 뻔했던 누구처럼 ‘휴가철에 사람이 많아서 같은 비행기에 탔는지는 모르겠다’며 혼자 살겠다고 오랜 후원자를 내치지도 않았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8월15일을 건국절이라고 우기는 이상한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여하튼 8월15일은 광복절이다. 오늘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사진이 있다. 작년 촛불집회의 기억을 대표하는 유명한 사진,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활짝 웃으며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라고 쓴 빨간색 손팻말을 들고 있는 사진 말이다. ‘대한민국은 시민이 주인이고, 더불어 함께 사는 나라(민주공화국)’라고 헌법 첫머리에 명시되어 있지만, 광복 이후로부터 이 나라가 지나온 시절들은 사실상 헌법과 무관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제 새로운,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시대를 저 소녀들이 열어젖히는 것으로 나는 느꼈다. 그래서 그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애국심은 어디에 있을까? 저 국무회의 때의 국민의례 속에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땅과 고향과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함께 살기 위해 싸우는 자들의 고통 속에 배어 있다. 그리고 저 촛불소녀들의 환한 웃음 속에도.
이 광복절에, 88일 남은 수능을 앞두고 문제집 앞에서 땀을 흘릴 왕년의 촛불소녀, 진짜 애국자들에게 힘내라는 인사를 전한다.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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