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20 21:23
수정 : 2009.08.2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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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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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등 굵직굵직한 뉴스에 묻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에 적잖은 경종을 울려준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한 대학 교수의 건설비리 폭로사건이다. 경기도 파주 교하새도시의 복합커뮤니티 공사에서 공사평가위원을 맡은 한 교수가 건설사 직원한테서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사실을 폭로하고 뒤이어 경찰이 해당 건설사를 압수수색했다고 한다. 이후 후속 보도가 나오지 않아 사건 처리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비슷한 사건 처리 과정을 볼 때 이번 사건도 해당 직원 개인을 처벌하는 수준에서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
관련 법률에는 부정한 청탁에 의한 뇌물 공여 시 해당 건설사를 최고 등록말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그간 검찰과 법원은 뇌물을 준 해당 직원만 처벌하고 회사는 처벌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해당 건설사가 부정한 방법으로 수주한 공사를 버젓이 그대로 시공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니 어떻게 건설분야의 부정부패가 없어질 수 있겠는가?
‘부패의 경제학’은 1970년대 중반에 나타난 경제이론으로서 부패의 원인과 결과를 경제학적으로 해명하고 적절한 처방을 모색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이다. 부패의 경제학에 따르면 부패가 심한 나라는 경제적 비효율로 낭비가 심하고, 투자와 성장이 저해되며, 조세포탈로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건설공사와 공공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등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특히 부패의 경제학 교과서에서 사례로 드는 사건 중에 서울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우리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역으로 부패행위가 심한 나라일수록 대규모 건설공사를 많이 진행한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대규모 건설공사가 많을수록 그만큼 부정부패의 기회와 수익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부정부패와 대규모 건설공사 사이에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알 수 없는 긴밀한 연관관계가 형성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대규모 건설공사가 여러 건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착수될 예정이다. 현 정부가 진행중인 ‘4대강 정비사업’에는 22조원 이상이 들어갈 예정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발표한 서울시 지하도로 건설사업에는 비록 민자이긴 하지만 11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큰 공사계획도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월 한-중 해저터널 건설을 제안했는데 이 사업에는 4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한다. 현재 국토해양부가 타당성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도 이를 초광역개발권전략 중간시안에 포함시켰다고 하니 이 사업 역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처럼 차기 대통령선거의 잠재적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대형 건설사업 계획을 내놓는 이면에는 청계천 사업의 성공으로 대통령 당선의 발판을 마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에서 배운 학습효과가 깔려 있음은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2008년 발표한 국제부패지수 비교자료를 보면 한국의 부패지수는 10점 만점에 5.6점으로 180개국 가운데 40위에 해당하는데, 이는 선진국 평균(7.1점)에 훨씬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여러 저개발국에 비해서도 낮은 점수다. 아직도 한국은 ‘부패천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만연한 부패와 빈번한 대형 건설공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장래의 부패경제학 교과서에 삼풍백화점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피해를 끼친 한국의 건설비리 사례가 실리게 될까 두렵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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