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8.27 21:12 수정 : 2009.08.27 21:12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위대한 지도자들의 구실을 빼놓은 채 복지국가 발전의 역사를 얘기하기는 어렵다. 가령 복지왕국 스웨덴에는 올로프 팔메라는 정치가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팔메는 1960년대부터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로 활동했고, 두 번에 걸쳐 총리를 지냈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쟁과 소련의 프라하 침공을 맹비난한 평화주의자였고, 아프리카에 어린이병원과 초등학교를 지어준 인도주의자로서도 유명하다. 그러나 팔메의 가장 큰 유산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이루어낸 스웨덴 복지국가이다.

스웨덴 이전, 복지국가를 대표한 영국에는 윌리엄 베버리지가 있다. 그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이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피폐한 영국인들의 가슴에 희망을 심었다. 미국 복지제도의 발전은, 1930년대 대공황의 고통 속에서 발휘된 루스벨트 대통령의 결단력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한국 복지의 역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을 빼놓고서 얘기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수호자, 남북화해의 주도자로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복지국가의 길을 연 개척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종종 묻혀버린다. 그의 ‘생산적 복지’는 꽤 귀에 익은 얘기가 되었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 복지국가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복지제도는 1960년대 이후의 개발독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의료보험 등 주요 복지제도가 이때 시작되었고, 평생고용 등 기업 단위 복지 혜택도 여간 쏠쏠치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복지란 게 경제성장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 이상은 아니었다. 복지 혜택 중 많은 것이 억압적인 노사관계 유지를 위한 당근으로 활용되어,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와 공무원 등 비교적 안정된 계층에 집중되었다.

민주화가 개발독재의 한 기둥을 무너뜨린 1990년대 이후 시대적 과제는 성장우선주의에 짓눌린 복지의 회복이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이 취약계층까지 확대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어 현대적 복지국가의 얼개가 갖추어졌다. 참여정부에서도 그 뒤를 이어 분배정책과 사회서비스 혜택을 늘렸다. 이 10년간의 시기를 거치며 평등과 연대를 목표로 내걸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참된 의미의 복지가 한국 사회에서 시작되었다.

김대중 시대 복지에 대한 눈길이 곱지만은 않다. 분배정책 때문에 양극화가 생겼다는 우파적 비판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자법 등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말미암아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좌파적 비판은 여전하다. 이 시기 비정규직의 대다수는 파견근로 때문에 생긴 게 아니었고 퇴직 근로자 중 정리해고자는 예외적 소수일 뿐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칼날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비판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의 불철저함을 공격하다 이명박 정부의 원조 신자유주의 앞에서는 그 법을 방어해야 하는 현실에 놓였다. 하지만 처지를 뒤바꾼 경험을 하고서도 이들의 생각이 현실에 다가서지는 못하였다.

이제 김대중 시대에 대한 우파 비판자들은 시장근본주의 이념을 넘어서 실용적 친서민 행보로 일보 전진하고 있다. 하지만 좌파들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이념적 잣대에 사로잡혀 있어, 이들에게 민생 문제를 끌어안는 현실주의적 정책 대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떠나갔지만, 갓 태어난 복지국가를 발전시켜 나갈, 김대중 시대 이후의 새로운 과제를 떠맡을 구심점은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자유시장 만능주의이건 국가개입 지상주의이건, 민생을 놓치는 이념과잉의 세력에게 미래는 없다. 새로운 시대의 준비는 바로 이런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