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28 20:02
수정 : 2009.08.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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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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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총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전후 일본 정치사상 최초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는 “역사적 사건”의 날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승리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한반도 정세 강연을 위해 방문한 시마네현의 한 집회에서도 민주당의 승리를 전제로 하면서 “하토야마 정권”의 외상 등 주요 각료와 외교정책 전망에 대한 질문이 잇따랐다. 한 지방신문사가 주최한 모임으로, 자민당을 지지해 온 지방유지가 주된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민주당 정권”의 방향성에 대한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오랫동안 지역사회에 군림하면서 지방 정계를 좌지우지해 온 보수층들이 돌연히 눈앞에 나타난 “정권 교체”의 거센 물결에 대해 느끼는 당혹과 불안, 그리고 체념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주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직후 언론 각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와 정세 분석은 한결같이 “민주당 압승”을 예측했다. 총 의석수 480석 중 300 내지 330석을 차지한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현재 의석 115석의 3배 가까운 대약진이며, 개헌 선을 넘는 거대 여당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자민당은 현재의 300석에서 100석 이하로 거의 붕괴에 가까운 수준의 대패가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당황할 정도로 거대한 “정권 교체” 태풍이다. 선거기간 중 여론조사의 “아나운스(발표) 효과”도 이번 선거에서는 “밸런스”(균형)가 아닌 “밴드 왜건”(편승) 현상이 두드러진다. “민주당 압승 전망”이라는 보도가 민주당 지지를 한층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회 특유의 “대세 순응(편승)주의”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만큼 자민당 정치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제 발표된 언론 각사의 선거 직전 정세조사에서도 “민주당 300석 이상”의 기세는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는 이번 선거의 의의에 대해 “혁명적 목적을 지닌 정권 교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일본의 정치가가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일본 국민은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며 안정과 안심감을 선호한다는 것은 거의 상식화되어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메이지 유신과 같은 사실상의 관제혁명도 “혁명”이 아니라 “전통으로의 복귀”로 설명된다. 하토야마 대표 자신이 “혁명”의 내용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커다란 틀의 변화, 즉 패러다임 전환을 지향하려는 것은 사실이다.
추상적이라 비판받는 경우가 많지만, 하토야마 대표는 “우애” 또는 “우애 혁명”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비전으로 제시한다.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한다. 그 연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혁명기의 “박애”로 연결된다. 사회 공동체의 횡적 연대를 강조하는 가치라 할 수 있으며,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는 이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폐해를 수정하는 건전한 보수주의의 한 토대로 삼으려 했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고전하는 배경에는 고이즈미 정권 이래 강행된 시장원리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낳은 사회 경제적 격차와, 이에 대한 반발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의 “우애 혁명”론은 옛 사회당 계열의 사회민주주의와도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오바마 정권에 이어 일본 “민주당 정권”의 탄생은 일세를 풍미한 시장원리 지상의 신자유주의에 대치할 새로운 정치 경제의 일본 모델을 모색하는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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