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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1 19:07 수정 : 2009.09.11 19:07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2학기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한창인 지금, 방방곡곡의 고3 교실들은 ‘배치표’로 도배되어 있을 것이다. 이 나라 모든 대학 모든 학과들을 전지 두 장 크기의 큼지막한 종이 앞뒷면에 성적순으로 일렬종대 세워 놓은 이 종잇조각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심란하다. 배치표는 학벌로 구획되는 한국 사회의 카스트 지도이며, 인생에서 제일 좋은 시간대를 빼앗아가는 미친 놀음들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오늘날 대학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캠퍼스를 갈아엎고 최첨단의 건물을 지어 올리고 글로벌 어쩌고 프런티어 어쩌고 하면서 버터를 바르고 쇼를 하는 것도 결국 이 배치표에서 조금이라도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 선생은 한의대가 배치표의 가장 윗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실까? 철인정치를 주창한 플라톤은 금융, 경제, 부동산, 물류 이런 학과들 한참 아래편 제일 꼴찌 자리에 철학과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러므로 배치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 천박하고 가련한 욕망들-‘먹고사니즘’-의 뼈대를 엑스레이 사진처럼 드러내는 인화지다.

그런데, 갈수록 분명해지는 게 있다. 내가 학생이던 20년 전에는 배치표의 적도 선상에만 자리잡아도 먹고살 만했지만, 이제는 이 배치표의 꼭대기에서도 안심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취직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청춘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내던 이 악마적인 체제가 극단적으로 강화되거나, 와르르 무너지거나 하는 두 개의 가능성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러 입장이 있겠지만, 나는 후자로 귀결되리라 예측한다. 나는 이 국면을 이 모든 파행들의 물질적 바탕이 되어 주었던 ‘경제 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아주 현대적이고 구조적인 상황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제, 배치표 한 장으로 집약되는 이 화탕지옥에도 서서히 끝이 보인다.

지난 학기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여러 교사들과 부산대 점필재연구소가 진행한 인문학 강좌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했던 일이다. 아이들은 고병권, 배병삼 선생과 함께 니체와 <논어>를 읽고 토론했고, 위안부였던 길원옥 할머니의 피맺힌 삶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이들은 마지막날 모둠별 발표회 때 정말로 유쾌하고 발랄하게 자신들이 얻은 깨달음을 표현했다.

지난여름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대학 1학년이 된 졸업생 아이들과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 전공부에 다녀온 일이다. 아이들이 4박5일간 했던 것이란 낮에는 논에서 엎드려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고 이야기 나눈 게 전부다. 그러나, 아이들은 농업을 우리 사회의 마지막 희망으로 믿고 있는 여러 스승을 만났고,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 여러 대안적인 삶의 현장을 직접 보았으며, 무엇보다 농사일이 의외로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화탕지옥의 끝에서 인문학과 농업이 희망의 중추가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말하고자 한다. 인생을 좀 살았거나, 뭔가 가진 게 있다는 이들은 나의 이런 생각을 당치도 않다 하겠지만 아이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인문학과 농업의 가치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여전히 이 뒤틀린 욕망들은 끝 간 데를 모르고, 배치표의 구속력은 아직 완강하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시인 김수영이 노래했듯, ‘바람은 딴 데서 불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데서’ 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믿는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성찰의 힘이, 그리고 흙 속에서 노동하며 흘리는 땀방울들이 이 모든 참담한 왜곡과 파행을 바로잡아 주리라는 것을.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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