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15 21:35
수정 : 2009.09.1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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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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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캐나다로부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했다. 광우병 문제로 인한 쇠고기 무역 분쟁으로 이 기구에 제소당한 것은 국제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고, 기구에는 분쟁해소 패널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는 지난해 촛불사태 때 미국 쇠고기 졸속 개방을 반대하는 쪽에 언제나 정부가 최후의 보루로서 제시했던 세계무역기구 피소 위험성이 구체화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유는 정부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졸속 협상 반대쪽이 우려했던 내용에 의해 발생했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이나 캐나다 모두 국제수역기구(OIE)로부터 같은 ‘광우병 통제국’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았는데 왜 미국 쇠고기는 수입하면서 캐나다로부터는 수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촛불사태로부터 1년도 훨씬 넘은 지금, 중요한 것은 당시 누가 옳았느냐 틀렸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대응이 가장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며 국민의 식탁을 보호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지금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을 실행해야 한다.
촛불사태 때 정부는 수역기구 기준은 국제 기준이기에 회원국인 우리 주변국들도 조만간 미국으로부터 한국과 같은 조건으로 수입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 주변국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에 제소당했다는 것은 작년의 정부 시각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준다. 국제수역기구 기준은 국가간의 동물 질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통상기준이자 회원국에 대한 권고기준이기에 질병 확산 방지의 ‘필요조건’이다. 수역기구도 자신의 기준을 바탕으로 교역국 사이에 서로 충분한 조건을 만들도록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수역기구 기준보다 강화된 ‘충분조건’으로 교역하는 것이야말로 수역기구 취지를 잘 지키는 것이며, 엄격한 수입조건의 주변국이 지금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당하지 않는 이유이다. 따라서 미국의 선물이라고까지 표현된 작년의 미국 쇠고기 수입 타결은 오히려 우리가 수역기구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것이고 이로 인해 지금의 상황이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이 점을 솔직히 인정하면 지금 상황은 쉽게 풀어갈 수 있다. 먼저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간접적인 접근방법을 권한다. 하지만 이것은 촛불사태의 연장이 아니라 작년과는 달라진 국제 정황으로 인한 재협상이라는 점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이 제한되었던 과거 정권 때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끈질기게 한국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했고 정부도 여러 차례 이에 응했다. 이제 우리도 세계무역기구 피소 상황을 근거로 미국과 재협상을 요구하고, 수역기구의 권고조건이 아니라 최신 과학적 내용과 더불어 회원국이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유럽연합의 과학 기준을 근거삼아 협상해야 한다. 미국이 내세우던 광우병 통제국이라는 것도 캐나다에서 보듯이 현재 광우병이 발생하는 나라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해서 양국간 질병확산 방지에 충분한 수입조건을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수입조건을 캐나다를 포함한 모든 광우병 통제국에 적용한다면 분쟁은 해소된다.
또한 국내에서도 유럽연합이나 일본처럼 일정 연령 이상의 도축소에게 광우병 전수검사를 실시해 자국의 안전성을 대내외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국제적으로 광우병 통제에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은 특정위험부위 제거, 사료정책, 전수검사이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소비자의 높은 요구에 맞춰서, 식육에 한우 유전자 검사를 하듯이 연령에 상관없이 민간 자율적인 광우병 검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부가 과거처럼 수출국의 입장을 대변하지 말고 국민과 국가의 입장에서 외교통상력을 발휘하여 대처해가야 할 때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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